[광교신문=김병수의 제주도사나] 

엊그제 친구들과 큰바다영 갤러리 전시 <안해룡 사진전-도쿄 조선인 대학살의 거리>를 찾았다.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은 백년전인

1923년에 발생했다. 약 6천여명의 조선인이 자경단에 의해 학살 되었다고 알려진 사건을, 영화 ‘박열’을 통해 실감했던 기억도 난다.

고경대 관장의 안내를 받아 전시를 둘러 보면 도쿄 일대의 학살지와 조선인위령비, 규모를 갖춘 관립추모관과 모퉁이에 틈새처럼 자리잡은 위령탑 등을 통해 학살의 시간이 인정적(人情) 인정과 공식적 배재로 남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제주 4.3의 사관과 수정주의사관 조차 제대로 정의되지 못한 채 세월이 가는 것처럼 간토대지진의 학살의 면모 역시 정치적이며 국가적 차원의 교활함에 감춰져있다.

민간의 집단적 광기와 살인을 국가의 폭력기구인 경찰, 검찰을 동원해 방조 조장했음을 위령비를 통해 설명하던 고경대 관장은

1) 탑의 일부를 도려내 다시 희생자의 이름을 세긴 사진은 민단에서 조총련계를 빼내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 것.

2) 사진의 학생 참배객들은 조총련계 학교 학생들임을 설명했다.

3) 다른 사진에서는 도쿄의 한 경찰서장이 조성한 위령비가 있고

4) 무성한 나무 사진은 학살 만행을 저지른 자경단원이 체포된 후 다시 풀려나 기념해 심은 나무라는데, 풀려난 기념이란 설과 / 반성과 추념의 의미를 담았다는 두 설이 전해진다한다.

 

그리고 식민지 모국을 둔 재일동포들의 삶이 해방 혹은 패망 후 저절로 나아졌을리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남북 두 개의

정부가 식민시절 강점국의 동포를 어떻게 대하고 존중해 왔을지는, 각자 나라의 근현대에서 국민 개개인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백년은 희생자와 그들 후손에게 얹혀졌을 세월의 더께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돌아 보게 한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일어난 백년전 사건은 그 시간만큼 현재의 일본과 한국, 국가와 개인에 대한 여러 생각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 희생자들의 아픔에 대해 무한한 연민과 미안함을 남겨둔다. (24.03.13)

 

* 글 • 사진 : 김병수 우도 담수화시설 문화재생 총괄기획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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