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신문=이헌모의 일본 이야기] 한국 인터넷을 보면 일본 사회의 성적 개방도를 가리켜 ‘성진국’이라 희화화하여 표현하는 걸 자주 목도한다.

내가 일본 유학을 시작한 1990년도 당시를 회상해 보면, 남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일본 여성의 패션이나 화장 등의 외적인 면에서 한국 여성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주: 어디까지나 1990년대 당시의 생각임ㅎ).

이는 다분히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과 무지함 등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단편적인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나도 그때는 불끈불끈하는 혈기왕성한 20대였고, 일본 사회의 면면이 신기롭게 느껴지고 색다르게 다가왔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 소위 황금시간대라고 하는 저녁 골든타임에 TV에서 여성이 상반신을 탈의한 반나의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는 걸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과연 듣던 대로 일본은 한국보다 선진국이면서 성진국이구나 하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 NHK의 ‘일본인의 의식’ 조사

일본에서는 1973년부터 5년마다 NHK에서 ‘일본인의 의식’ 조사를 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이 통계자료를 보면 일본인 남녀의 결혼관이나 혼전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자료는 헤이세이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2018년의 조사인데,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이 풍문 대로 ‘성진국’인지 어떤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해 준다.

이들 조사 항목 중에서 ‘혼전 관계’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 소개해 보도록 한다. 이는 내가 수컷이기에 가질 수 있는 생물학적인 흥미 차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천착하던 중, 그중 하나의 요소로서 다루고 있을 뿐이다.

즉 호기심보다는 연구자로서 당연한 관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히는 바이니 행여 오해는 없으시길 바란다.

 

 

◇ ‘혼전 관계’에 대한 조사 결과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조사가 실시된 1973년에 비해 45년이 지난 지금은 혼전 관계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이 매우 증가했다는 점이다.

첫 조사부터 지금까지 혼전 관계에 대한 조사 항목은 변함이 없는데, 다음과 같은 네 개의 항목으로 구분된다.

1.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는 성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2.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성적 관계를 가져도 된다

3.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라면 성적 관계를 가져도 된다

4. 성적 관계를 갖는데 결혼이나 사랑은 관계없다

1번은 성을 엄격하게 생각하는 타입으로 금욕을 중시하며 성과 결혼과 가족 형성을 불가분의 관계로 생각하는 타입이라 하겠다. 이에 비해 2〜4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을 금욕적 윤리에서 해제하고 성과 결혼을 나누어 생각하는 타입이라 하겠다.

위의 네 항목을 5년마다 조사한 결과, 우선 1번의 어떤 경우라도 ‘불가’ 인 금욕적인 생각이 1973년 58%였던 것에 비해, 2018년은 17%로 대폭 줄어들었다. 2번의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면 가능하다는 비율은 73년의 15%에서 2018년은 23%로 증가했다.

3번의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은 73년의 19%에서 2018년은 47%로 크게 늘어났다. 마지막으로 4번의 사랑이고 결혼이고 다 소리고 그냥 눈만 맞으면 할 수도 있다는 무조건 가능하다는 73년의 3%에서 2018년은 7%로 늘어났지만, 그 폭은 매우 좁다.

 

 

◇ 일본인은 성에 개방적인가?

위의 결과를 놓고 볼 때. 1973년 첫 조사부터 45년이 지난 2018년의 시점으로 보면, 일본인의 성에 대한 가치관이 ‘개방’ 적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성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시대와 함께 다양한 가치관이 글로벌화 되며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단지 개방적으로 변화했다고 해서 일본이 성진국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아무런 조건 없이 혼전 관계가 가능하다고 하는 일명 묻지 마 관계를 추구하는 비율은 45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겨우 4%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을 한다거나 결혼을 약속했다고 한다면 혼전 관계를 가져도 된다는 생각은 매우 증가했다. 이런 점에서는 엄격한 사회적 윤리관에서 개인이 해방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일본인도 성적으로 개방적이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상호 간의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에 ‘후조쿠(風俗)’ 라 불리는, 예를 들어 여성성을 상품화한 풍속 산업이 다양하게 번창하고 있다고 해서 일본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어디까지나 하나의 비즈니스로서 생성되어 활성화되고 있음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그래서 일본은 성진국?

그런 소위 풍속 산업을 공권력으로 얼마나 규제하고 관리하는가는 각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므로 일률적으로 이렇다저렇다 얘기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일본은 한국에 비해 규제가 완화된 사회로 보인다.

따라서 여성성 또는 남성성을 상품화하여 비즈니스 하는 것을 두고 일본인이 성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라고 착각을 하고 마구잡이로 들이대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믿음이나 신뢰가 밑바탕이 되지 않은 상대에게 훅 들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 결론이지만,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는 어떨지 모른다. 막상 들이대보지 않고는....

 

* 글 • 사진 :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中央学院大学) 법학부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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