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신문=이헌모의 일본 이야기] 1. 어제 저녁 우에노 옆 유시마의 한국 음식점에서 번개를 맞은 세 사람이 모여 즐거운 주연과 대화를 세 시간 이상 이어갔다. 날씨 좋은 가을 토요일의 청천벽력이 아니라 번개였기에, 번개를 맞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적었다.

96년에 일본으로 유학을 와 이학 박사 학위를 취득 후 일본 기업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김 남재 Namjae Kim 박사와 일본 생활 10년이 넘어가고 있으며, 일본 엔터테인먼트계를 휘어잡을 기세로 활약 중인 제일 젊은 40대의 이 범선 씨 이렇게 셋이 행운의 번개를 맞았다.

 

2. 통상 한국인 아재 셋이 모이면 정치부터 시작하여 한국 사회, 경제 등의 소재부터 한일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친 대화를 나누기 십상인데, 한국 정치에 대해선 거의 화두에 올리지 않았다. 그 이유야 뭐 더 이상 언급하기도 X 팔리기에 서로 암묵의 동의가 이루어진 탓이렸다.

대신 각자의 일본 생활을 통해 터득하고 느끼고 절감하고 있는 이 사회의 장단점 등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가감 없이 나누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아마도 생맥주 두 잔과 한국 소주를 7,8병은 해치운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3. 약 세 시간 정도 주연을 즐긴 후, 기분 좋은 상태에서 파장을 했다. 2차를 못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오기는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타국에서 자리잡고 또한 자기 영역을 넓혀가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가는 과정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 꿋꿋이 어깨를 펴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동지들을 만나 회포를 풀다 보면, 또다른 에너지로 충전이 되고 심적으로도 많은 위로가 된다. 어제가 그런 시간이었다.

4. 우에노에서 아쉬운 작별을 한 후, 한 시간 40분 정도 시간을 들여 9km 되는 집까지 걸어왔다. 그냥 운동을 목표로 걷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하루를 정리할 때도, 아님 난해한 문제에 고민스러울 때도 걷는다.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방법을 찾고는 한다. 어차피 이는 책상에 앉아서나 소파에 누워서나 해야 할 과정인데 그걸 걸으면서 할 뿐이다. 따라서 걷기는 내게 있어서는 1차적으로는 두뇌 활성화와 심리 치유이고, 2차가 건강관리다.

 

어제 두 분에게 4년 전의 내 책 #도쿄30년일본정치를꿰뚫다 를 건넸다. 책에서 주로 다루어진 아베 전 수상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남겨놓은 부(負) 의 유산은 여전히 활개를 치며 이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래서 후속작에서는 그런 부분과 전망에 대해 다루려 목하 원고를 작성 중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전혀 원고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새 책의 가제를 ‘뜨는 한국, 지는 일본’(어디까지나 가제이며, 책 내용의 큰 틀) 이었는데, 요즘 한국을 보면 잘 뜨다가 추락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 같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책의 컨셉을 다시 잡고 있다. 가령 ‘ 나란히 사이좋게 추락하는 한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무튼 당분간 혼돈과 고민의 시간이 이어질 듯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꾸준히 걸어야 하며, 그렇게 걸으며 뒤죽박죽 상태인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22.10.02)

 

* 글 • 사진 :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中央学院大学) 법학부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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