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신문=이헌모의 일본 이야기] 

한국에 추월당한 것은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일본이 한국에 ‘음악’에서 압도적 큰 차이가 나게 된 “슬픈 현실”

일본의 음악이 세계적 히트를 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호세이 대학교 대학원 마스부치 도시유키 교수는 “일본의 음악 산업은 기득 권익에 묶여, 디지털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 때문에 음악 시장은 10년 동안 절반 정도까지 침체해 버렸다”라고 한다

 

■ 미국 데뷔를 한 일본인 아티스트의 말로

좀 더 K-POP의 해외 전개를 자세히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내수로 음악산업이 충당되기 때문에, 무리하게 해외시장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 되고 있지만, 실제로 그랬을까?

해외, 특히 서양에서 인정된다는 것은 일종의 스테이터스라는 측면을 가진다. 판매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구미에서의 성공은 아티스트에게는 잠재적인 욕구가 아닐까.

실제로 사카모토 큐의 ' 上を向いて歩こう '(영어 타이틀 'SUKIYAKI')가 1963년 6월 15일 자로 빌보드 차트의 'HOT100' 주간 1위를 획득한 이후, 몇 명의 일본인 아티스트가 미국 데뷔를 하였지만, 거의 결과에 연결되지 않았다.

영어가 서투르다든가,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지금도 BABYMETAL이나 ONE OK ROCK의 활약이 눈에 띄는 정도로, 한국과 같은 착실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 급격한 성장을 보이는 아시아에서 일본만 축소

K-POP은 아시아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 레코드 산업연맹(IFPI)에 따르면 2020년 아시아 시장의 성장은 전년대비 9.5%이지만 일본은 마이너스 2.1% 감소세였다. 한편 한국의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44.8% 증가한 것을 보더라도 그런 사실이 증명될 것이다.

참고로 일본을 제외하면 아시아 시장은 전년 대비 29.9% 증가한 급격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디지털에 의한 수익도 수익 총액의 50%를 넘는 것으로 되어, 이 점에서도 일본이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부각되고 있다.

■ 한국은 음악의 '수출'이 국내와 같은 정도로 성장

와세다대학 MBA엔터테인먼트학 강사·나카야마 아츠오 “ 미국 톱 차트를 제압한 K-POP ,일본 음악 산업에 승기는 있는가? " 에 의하면, 10년 전, 일본은 그 자체가 아시아 시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음악 대국으로, 50억 달러를 넘는 시장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3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600만 달러였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일본은 절반인 26억 달러로 떨어졌고, 한국은 5배인 5.8억 달러가 되었다.

아직도 규모 면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4배이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수출'이라고 기사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K-POP로 판매된 한국음악의 해외시장은 거의 국내 시장과 같은 규모의 5.6억 달러, 10년 만에 34배가 되었다.

해외에서 버는 양으로 생각하면, 일본 음악 시장의 해외 전개야말로 K-POP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나카야마는 말한다(도표 1).

 

■ PSY의 '강남스타일'이 바꾼 K-POP

또 K-POP 라이터의 DJ 거품에 의한 기사 「BTS , aespa…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강하기만 한 K-POP 아이돌의 이차원화 전략」 에 의하면, 2018년도 한국 음악 관련 산업의 수출액 비율은 일본이 65.1%, 중국이 19.8%, 동남아시아가 12.3%, 북미 1.3%, 유럽 1.2%(한국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출판한 ‘2020년 한류 백서’에 의한 숫자)

다음 해 2019년도 음악산업 수출액 합계는 7억 5619만 8000달러로 일본은 55.1%, 동남아시아 17.1%, 중국 15.5%, 북미 10.6%, 유럽 3%였다고 한다(한국통계정보원의 ‘음악산업의 주요국·대륙별 수출액의 현황'에 따른 숫자).

별개의 통계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기사에서는 2019년에 관해, 한국의 아티스트의 해외 공연이 많았던 것도 한요인으로 하고 있어, 북미 시장의 신장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K-POP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고 하면 BTS나 블랙핑크가 될 것이지만, 해외 전개의 흐름이 바뀐 것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히트에서다.

 

‘강남스타일'은 2012년 7월 15일 유튜브에서 MV가 공개되면서 그 2개월 후에는 조회 수 1억 회를 돌파했다. 또 빌보드 ‘TOP100’에서도 최고위 2위를 기록, 한국인 아티스트로는 과거 최고를 기록했다.

'강남스타일'은 한국인이 작사·작곡하고 가사의 대부분은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북미에서 처음으로 대히트한 곡이 된 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이며, 그 뒤에 BTS나 블랙핑크의 히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 K-POP 아티스트를 주력 기업이 지원

K-POP은 PSY 이전에도 BoA와 SE7EN, Wonder Girls 등이 북미 진출을 도모해 왔지만, 기대만큼의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PSY와 '강남스타일'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북미에서 K-POP을 인지시킨 최초의 아티스트이며 악곡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놓칠 수 없는 것은 삼성, LG, 현대 등 한국의 주력 기업이 국내외에서 K 팝 아티스트를 광고에 기용한 것이다. 유명 아티스트는 여러 회사의 공식 파트너를 획득하고 있다.

 

또 K-POP 아티스트의 해외 라이브도 이들 기업이 협찬하는 일이 적지 않다. 더불어 한국 이외의 기업이 협찬하는 사례도 있다. 이것도 일종의 시너지 효과일 것이다. K-POP과 한류 드라마의 시너지 효과와는 다른 스테이지에서의 시너지 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 K-POP은 일본을 모델로 추월했다

필자는 2013년 두 번 서울에 가서 콘텐츠진흥원과 음악기업에서 히어링을 한 적이 있다. 인상 깊은 것은 DMC의 CJ ENM을 방문했을 때였다.

아마 30대 초반이라고 생각되는 팀장은 우리에 대해 화이트보드에 일본 팝뮤직의 역사의 개략을 그려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1970년대에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한 것과 밴드 붐에 대해서도 기재했다. 이에 매우 놀랐다.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이수만이 1990년대 후반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아이돌 가수의 발굴·육성·선전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모색하며 미성숙했던 한국의 아이돌 음악시장 개척을 목표로 했다.

 

우선 일본, 그 후는 미국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은 잘 알려져 있고, 에이벡스를 참고로 주식의 상장을 실시했다. 현재는 한일의 입장이 역전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일본을 하나의 벤치마크로 하고 있던 것은 분명하다.

■ 일본 음악업계는 기득 권익에 묶여있다

다만 한국의 음악산업은 디지털화에 호응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드라마에도 공통되는 부분일 것이다. 역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일본과 달리 기득 권익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음악산업은 전전부터 오랜 역사를 갖고, 이에 따라 지적재산에 관한 권리 보유라는 산업의 이익 창출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리스크 분산의 의미로 공동 원반이라는 형태로 권리의 분할 보유도 있었지만,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독점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오랜 역사는 산업 내에서의 울타리를 만들고, 또한 합종연횡도 반복해 왔다. 그것이 경쟁을 낳고 산업을 발전시켜 왔지만, 반면 업계 내에서의 신뢰를 양성할 수 있었는가 하면 의문도 남는다. 한국에는 이 역사적 전제조건이 얇기 때문에 디지털화에 어저스트한 형태로 독자적인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한국은 기업과 정부가 유연하게 지원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음악 산업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업 전반과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른바 수직, 수평의 기존 기업 통합이 아니라 종횡무진으로 협력관계가 구축되어 가는 모습은 훌륭하다. 마치 아메바처럼 상황에 따라 체계가 조립된다. 그리고 그것은 플랫폼을 축으로 만드는 형태가 취해진다.

 

기본적으로 콘텐츠 산업은 아날로그 시대에도 유통을 쥐고 있는 것에 어드밴티지가 있다고 알려져 왔다. 디지털 시대에는 플랫폼을 석권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전략 구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한국 정부의 지원 체제가 확립되고 있다는 점이다. 콘텐츠진흥원 설립에 관해서는 우여곡절도 있고, 현재에도 콘텐츠 관련 몇몇 외곽 단체가 존재하고 있지만, 일본에 비해 정보 공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홍보 활동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적어도 일반 시민에게는 정부의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 즉 한국 쪽이 투명성이 높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부와 콘텐츠 산업의 관계성이 산업계 이외에도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가 콘텐츠 산업의 고부가가치에 눈을 돌리고 IMF 위기 때 재벌 도태, 통합이 이루어진 가운데 선택과 집중이 동시에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 이니셜 'K'에서 보이는 한국의 자신감

어느 시점까지 한국 콘텐츠산업 벤치마크는 일본이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독자적인 비즈니스 체계를 구축하고 그를 결과로 만들어 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은 더 이상 이 영역에서도 아시아의 톱이 아니고, 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앞으로는 배우는 입장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음악산업계, 나아가 콘텐츠산업계는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고, 일본 정부도 같은 자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에 일본에서는 한국의 대응을 K 방역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검역 시스템, 아웃리치 캠페인, 테스트 및 접촉 추적을 포함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제한하는 데 사용하는 전략을 말한다. 한국 보건복지부가 발안한 용어이다.

한시기는 기능부전에 빠져 야유받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가 스스로 'K'라고 이니셜에 붙이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K-POP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독자적인 체계나 사건에 'K'라고 이니셜에 붙여 부르는 것은 명확한 자신의 발로로 파악해도 좋다.

■ 2027년에는 1인당 명목 GDP에서도 추월당한다

확실히 한국의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2020년 IMF 통계에 의하면 세계에서 10위 규모로 되어 러시아, 브라질, 호주의 상위에 있다. G7이 확대되면 참여도 당연한 위치에 있다.

그래도 아직 일본의 3분의 1 정도의 규모이지만, 예를 들어, 일본 경제 연구 센터는 2021년 12월 15일, 개인의 풍요를 나타내는 일본의 1인당 명목 GDP가 2027년에 한국, 28년에 대만을 밑도는 시산을 발표했다. 일본은 행정 등의 디지털화가 늦어져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재도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며, 전술한 통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특정 기업, 산업의 기세를 무시할 수 없다.

반도체, 스마트폰, 일부 가전제품에서는 한국의 어드밴티지는 해외 시장에서도 현저하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다. 「K」 가 앞으로 세계의 트렌드를 견인할 존재가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ー끝ー (23.03.05)

 

관련 링크 : 일본의 J-POP 이 한국의 K-POP 을 이기지 못하는 근본 원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 글 • 사진 :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中央学院大学) 법학부 교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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