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IN이슈=지용진] 

요즘 나의 글쓰기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안척 난척 해본척 안한다. 문장을 가져와 우라까이도 안 한다.

문제 의식을 드러내는 담백한 지식의 총량으로 간다.

석-박사 200만명 시대. 논문엔 어디서 들었을 법한 차용될 법한 문장이 넘친다. 남의 글도 “  ” 인용부 처리만 하면 자기글이 된다. 카피킬러에서도 배제된다.

자기글 90프로 넘는다 자랑도 한다. 글에서 중요한 건 가치다. 새로운 논문이 창의적이어야 하고 something new의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글에 대한 강의도 몇번 했다. 천편일률은 피하고 쉽게 풀어서 써라. 간단한 요지다.

이즘 제목 장사하는 기사를 보면 말장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이트 작법에 정통하지 않다면 발견 못하고 자나칠 수 있다.

기사는 귀납법적 전개다. A is B란 팩트(fact)의 나열이다. 이를 비비 꽈 쓸 데 없는 어그로를 끈다.

기사도 사람이 쓰는 것. 생각이나 감정을 이입하면 팩트(fact)와 멀어진다. 내 보기엔 못된 놈은 못된 기사를 쓴다. 불량한 기사를 쓰니 잘 썼다고 칭찬 받는 게 오늘의 언론이다. 왜곡된 시선이 독자에게 자극적 제목과 함께 전달되고 엉뚱한 방향의 여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짜가 진짜를 자처하는 세상의 풍속을 그대로 닮아가는 듯 우려 될 때도 있다. 소위 지식인층도 이런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져 잘 못된 사실을 설파하는 사례를 비일비재 보는 세상이다. 기자도 똑같다. 자신의 제한적 정보를 확신하면 이런 류의 기사가 안나올 수 없다.

기사 작법엔 확언을 피한다는 매뉴얼이 있다.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확정할 수 없는 퍼나미넌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글쓰기를 생각한다. 식자층을 포함한다. 대립하는 정치적 견해의 시퍼런 칼날이 오가는 이즘이고 보면 사실과 오류의 잣대는 신뢰할 팩트(fac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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