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최초로 유료 칼럼화 시도, 방향성과 속보성 지향

[오풍연 칼럼=광교신문]주말 아침입니다. 오풍연 칼럼을 시작한 뒤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처음 1인 독립매체를 선언했는데 그 같은 약속을 어느 정도 지킨 것 같습니다. 회원제로 운영하다보니 외압은 없었습니다. 그러려고 독립언론을 생각했구요. 모두 회원님들이 성원해준 덕입니다. 소문 등을 듣고 가입을 신청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는 확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유료 원칙을 확고하게 준수하기 때문입니다. 유료라고 하면 "뜨악"하기도 합니다. 국내서 맨 처음 시도한 유료화입니다. 모두들 안 된다고 했죠. 그래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내가 30일 아침 오풍연 칼럼방 밴드에 올린 글이다. 이처럼 수시로 회원들과 소통을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풍연 칼럼도 있을 수 없다. 나에게는 모두 고맙고 감사한 분들이다. 그럼 어떤 분들이 회원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로 보면 된다. 가장 유명인 가운데는 박지원 의원이 있다. 평생회원으로 가입하셨다.

우리나라서 유료 칼럼은 내가 최초로 시도했다. 칼럼니스트들이 닷컴을 만들어 광고를 유치하려고 했지만 대부분 손을 뗐다. 광고가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럼이 자리잡기 쉽지 않은 이유다. 내가 오풍연 칼럼방(유료)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기자들이 “안 된다”고 했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분야라서 그랬다. 하지만 나는 도전했다. “불가능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이른바 칼럼은 넘친다. 내용도, 방향도 대동소이하다. 나는 그것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유료화를 한 결정적인 동기다. 무엇보다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기다, 아니다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칼럼은 양비론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그럼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 칼럼에서 특히 양비론은 지양해야 한다. 어찌보면 책임 회피로도 비칠 수 있다. 반면 오풍연 칼럼은 방향을 확실하게 잡는다. 아닌 것은 ‘노’라고 한다.

그 다음은 속보성이다. 매일 칼럼을 쓰니까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다. 하루 많게는 다섯 개까지 쓴 적이 있다. “그러다가 과로사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나는 비교적 칼럼을 쉽게 쓴다. 팩트만 확인하고 내 생각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속도 면에서 남들보다 두세 배 빠르게 쓸 수 있다. 그래서 속보성도 지향할 수 있었다.

요즘은 처음보다 더 쓴다. 하루 평균 2~3개씩 쓰고 있다. 나는 칼럼을 쓸 때 가장 즐겁다.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어서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이미 권력 및 재벌로부터의 독립은 선언했다. 그 결과 독립언론의 묘미를 만끽한다고 할까.

누가 묻는다, 한국에 볼 만한 언론이 있느냐고. 나는 우스면서 얘기한다. “한국에는 오풍연 칼럼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 발전시키고 싶다. 단 조건이 있다. 독자(회원)들과 함께 한다.

오풍연 칼럼니스트
오풍연 칼럼니스트
  • 1979년 대전고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1986년 KBS PD, 서울신문 기자 동시 합격
  • 1996년 서울신문 시경 캡
  • 1997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 2000 ~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간사)
  • 2006 ~ 2008년 서울신문 제작국장
  • 2009년 서울신문 법조大기자
  • 2009 ~ 2012년 법무부 정책위원
  • 2011 ~ 2012년 서울신문 문화홍보국장
  • 2012. 10 ~ 2016. 10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2012. 09 ~ 2017. 02 대경대 초빙교수
  • 2016. 10 ~ 2017. 09 휴넷 사회행복실 이사
  • 2017. 10 ~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 2018. 05 ~ 현재 오풍연 칼럼방 대표
  • 2021. 05 '윤석열의 운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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