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칼럼=광교신문] 올해도 우수한 학생들이 거의 모두 의대로 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우수한 학생이 의대로 모이면 병원이 좋아질 것은 틀림 없다. 한국 의료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선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게다. 이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물리, 화학, 생물 등 순수 자연과학도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의대로만 모이니 이들 학과는 외면당하다시피 하고 있다. 개인, 학교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말도 들린다. 우수한 이과생들이 제주대 의대까지 지원하려다 안 되면 서울 공대에 지원한다고.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대 쏠림 현상은 분명하다. 서울 공대에 진학한 학생 다수도 반수를 하고 의대에 지원한단다. 학생 개인의 선택이어서 나무랄 수도 없다. 의대에 가는 학생들이 공대나 자연과학대로 가면 더 큰 보람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의대 편중 현상은 평생 직장 개념으로 볼 때 의대보다 더 나은 학과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사 면허만 있으면 자기가 하기 싫을 때까지 일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80살이 넘어서도 진료를 하는 의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런 매력에 끌려 의대로 진학한다고 하겠다. 아침에 재미 있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 반도체 학과의 경우 입학만 하면 100%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취업이 보장되는데 등록을 포기하고 의대로 간단다.

조선일보가 그것을 짚었다. 기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올해 첫 신입생을 선발한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23학번 정원은 총 40명. 이들 전원은 삼성전자 취업이 100% 보장되고, 등록금 전액 지원에 기숙사비 무료, 특별장학금에 해외 인턴 기회라는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진다. 그런데도 대학 측이 서울·부산의 특급호텔에서 VVIP급 만찬을 연 것은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19일까지였던 포스텍의 합격자 예비등록 기간에 상당수 합격자가 등록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2023년도 연세대·고려대·한양대 반도체 계약학과도 수시 모집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69%)이 등록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을 택했다.

각 대학에 따르면, 전액 장학금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취업 보장을 포기하고 합격자들이 선택한 것은 의대·약대였다. 성적이 우수한 이과 학생들은 공대와 의대에 중복 합격한 경우 대부분 의대를 선택해왔는데, 한국 대표 공대가 파격적인 특전을 내걸고 개설한 반도체 계약학과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대학 입시에서 의대, 약대, 치대 정원을 모두 채운 뒤 공대에 오는 현상이 반도체 계약학과에서까지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며 “인재 수혈을 위한 파격적인 지원과 교육 여건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공대나 자연대에도 우수한 학생이 가야 나라 전체가 부강해질 수 있다.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진짜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까닭이다. 반도체 계약학과까지 이렇다면 다른 과는 말할 것도 없다. 이를 어찌하랴. 현재는 감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오풍연칼럼

오풍연 칼럼니스트
오풍연 칼럼니스트
  • 1979년 대전고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1986년 KBS PD, 서울신문 기자 동시 합격
  • 1996년 서울신문 시경 캡
  • 1997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 2000 ~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간사)
  • 2006 ~ 2008년 서울신문 제작국장
  • 2009년 서울신문 법조大기자
  • 2009 ~ 2012년 법무부 정책위원
  • 2011 ~ 2012년 서울신문 문화홍보국장
  • 2012. 10 ~ 2016. 10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2012. 09 ~ 2017. 02 대경대 초빙교수
  • 2016. 10 ~ 2017. 09 휴넷 사회행복실 이사
  • 2017. 10 ~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 2018. 05 ~ 현재 오풍연 칼럼방 대표
  • 2021. 05 '윤석열의 운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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