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풍연 칼럼=광교신문] “자기 서울신문 사장 안 된게 잘 된 것 같아” 아내가 이 같은 말을 했다. 호반건설이 이런 저런 일로 방송에 자주 나오자 아내가 한 말이다. 좋은 일로 언급됐을 리가 없다. 최근 정진상 사건에서도 호반건설이 나온다. 비리에 연루됐다는 뜻이다. 나도 호반건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지만 그 기업을 좋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 했다. 그럼 문제가 있다는 얘기일 터.

차치하고. 지난 해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인수했다. 서울신문은 내가 25년 2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 그래서 친정 같은 회사라고 말한다. 그런 신문이 민간 기업, 그것도 말 많은 건설회사에 넘어갔으니 씁쓸했다. 나는 정말 서울신문을 사랑했다. 1986년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서울신문은 기자, KBS는 PD로 각각 합격했다. 동시에 붙었던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PD가 더 좋다며 KBS로 가라고 권유했지만, 뜻한 바가 있어 기자의 길을 걸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서울신문에 다닐 때도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나는 그 때마다 감사함을 전하면서 “서울신문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 떠나도 나 혼자 남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만큼 서울신문에 대한 애정이 컸다는 뜻이다. 서울신문에서 온갖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시경캡, 노조위원장, 법조반장, 국회반장, 청와대 출입기자, 부장, 국장, 법조대기자, 논설위원 등을 거쳤다. 나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사장에 도전하기 위해 2012년 2월 사표를 내고 나왔다. 서울신문은 사표를 내야 사장에 출마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서울신문은 정부가 사장을 지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만 공모다. 그 벽을 깨기 위해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른바 낙하산에 밀렸다. 그 뒤에도 2015년, 2018년, 2021년 세 번이나 더 출마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2021년에는 호반도 주주로 참여하고 있을 때다.

나는 서울신문이 호반에 넘어갔다는 얘기를 듣고 후배 기자들을 나무랐다. 영혼을 팔았다고. 호반은 당시 서울신문을 인수하면서 전 사원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한 사람 당 수천만원씩 주었다. 1억원을 받았다는 소문도 들렸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고 할까. 나는 호반이 이 같은 제시를 했을 때 기자들을 포함한 사원이 넘어갈 것으로 보았다. 내 예상대로였다. 찬반 투표 끝에 호반이 서울신문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내가 영혼을 팔아 먹었다고 한 이유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왜 인수했겠는가. 그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을 인수한 뒤 서울신문의 보도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모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호반건설에 대해서는 비판하기 어렵다. 호반이 어떤 기업인가. 광주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안다. 특히 기자들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요즘 호반건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려도 서울신문은 쓰기 힘들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서다. 후배 기자들이 불쌍하다. 언론은 성역이 없어야 한다. 서울신문은 독립 언론과 거리가 멀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몰랐다면 기자가 아니다.
#오풍연칼럼

오풍연 칼럼니스트
오풍연 칼럼니스트
  • 1979년 대전고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1986년 KBS PD, 서울신문 기자 동시 합격
  • 1996년 서울신문 시경 캡
  • 1997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 2000 ~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간사)
  • 2006 ~ 2008년 서울신문 제작국장
  • 2009년 서울신문 법조大기자
  • 2009 ~ 2012년 법무부 정책위원
  • 2011 ~ 2012년 서울신문 문화홍보국장
  • 2012. 10 ~ 2016. 10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2012. 09 ~ 2017. 02 대경대 초빙교수
  • 2016. 10 ~ 2017. 09 휴넷 사회행복실 이사
  • 2017. 10 ~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 2018. 05 ~ 현재 오풍연 칼럼방 대표
  • 2021. 05 '윤석열의 운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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