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잔뜩 흐렸다. 기온은 영상을 가르켰지만 가끔씩 부는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볼을 쓸었다. 팔달문에서 수원화성으로 진입하는 입구엔 아찔한 경사가 이어졌다. 당시의 토목공사의 규모가 가히 짐작되는 부분이다. 날카로운 돌들이 가지런히 정렬됐다. 수백년 풍상의 흔적이 암갈색의 돌빛에 배었다.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장정들도 올라가기 벅찬 곳에 동네 어르신이 가뿐히 오르신다. 수원화성 주변에 사시는 분들의 내공이다. 얼마나 올랐을까. 등에 땀이 흘렀다. 묵묵히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수원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가히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로써 정조가 계획했던 수원화성의 큰 뜻이 품어져 있었음을 실감했다. 성곽에는 총포를 쏠 수 있는 구멍들이 촘촘이 나있다. 외적의 침입에 응분의 대응을 치루고자 했던 선조들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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