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18)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이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겨울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보라

봄기운에 떠밀려 총총히 떠나가면서도

겨울은 아련히 여운을 남긴다

어디 겨울뿐이랴 지금 너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라

바람 같은 세월에 수많은 계절이 흘렀어도

언젠가 네 곁을 떠난

옛 사랑의 추억이 숨결처럼 맴돌고 있으리

 

- 정연복, <꽃샘추위> 전문

 

엊그제만 해도 봄이 너무 빨리 오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곳이 많다. 꽃샘추위다. 복수초, 노루귀, 산수유, 매화 등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중부지방까지 활짝 피었고 남부지방에는 목련도 피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꽃샘추위가 찾아온 것이다. 어느 해에는 활짝 핀 목련이 된서리를 맞아 흉물스럽게 망가지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식목일에 눈발이 날리기도 했다. 고향의 사과밭에는 사과 꽃이 핀 후에 서리를 맞아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한 때도 있었다.

꽃샘추위가 온다고 해서 봄의 시계를 멈출 수는 없다. 이미 피어난 꽃들, 당장이라도 피어나려고 준비하는 꽃들, 두꺼운 흙 이불을 벗고 돋아나기 시작한 새싹들은 잠시 시련을 겪지만 굳건한 생명력으로 이겨낼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과 같다. 우리는 누구나 어려움 없는 순탄한 삶을 기대하고 소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렇게 살아가지는 못한다. 누구에게나 생의 긴 여정 속에서 어느 때엔가는 크고 작은 아픔을 겪고 시련을 이겨내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큰 아픔을 겪고 큰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시인은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그것들을 가장 적절한 말로 표현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사람이다. 실패와 좌절을 당한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고, 슬픔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새 심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시인의 특별한 재능이며 사명이다.

최정란의 <동행>은 우리의 삶에는 즐거운 일과 힘든 일이 함께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오광수의 <사람이 산다는 것이>는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지만 소망과 인내를 가지고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길임을 노래하고 있다. 문병란의 <희망가>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이라고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동행 / 최정란

 

토마토 한 포기를 화분에 옮겨 들여놓는다

토마토는 혼자 오지 않고 진딧물과 같이 왔다

토마토를 따라서 진딧물이 오듯이

내가 들여놓은 것은 언제나 다른 무엇과 함께 온다

기쁨을 따라서 슬픔이 오고

희망을 이야기하자 절망이 뒷면에 붙어온다

사랑을 생각하자 번민이 불면을 몰고 온다

진딧물을 버리려니 토마토 화분을 버려야 하고

슬픔을 버리려니 기쁨이 앞서 나간다

절망을 없애려니 희망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번민의 밤을 버리려니 사랑이 떠나간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 오광수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은

집채 같은 파도가 앞을 막기도 하여

금방이라도 배를 삼킬듯하지만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 삽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비 오듯 슬픈 날이 있고

바람 불듯 불안한 날도 있으며

파도치듯 어려운 날도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견디지 못할 일도 없고

참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다른 집은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생각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집집이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가정마다 아픈 눈물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웃으며 사는 것은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희망가 /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시 읽기시 낭송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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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