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5)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시와 노래가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그림 같은 시라니? 소설 같은 시라니? 시를 읽으면서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할 수 있으면 그림 같은 시이고, 사람의 삶이나 세상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면 소설 같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특별한 재능 중 하나는 누구나 보고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글로 재미있게, 멋있게, 의미 있게 그려내는 것이다. 시인은 사소한 사물이나 작은 경험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정교하게 표현한다. 시도 꾸며낸 이야기(픽션)일 수 있기 때문에 관찰하고 느낀 것을 가상으로 멋있게 포장하거나 과장하기도 하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대신하여 그려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깊이 생각하고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몇 년 전 꽃보다 더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뭐라고 표현하고 싶어서 끙끙대다가 졸시를 지어보았다. 이 짧은 글에서 곱게 물든 늦가을의 아름다운 산야를 상상할 수 있다고 함께 읽은 사람들이 호평하여 동인지에도 실었다. 

   만추 / 최상현

   하늘 화가님이
   바람 붓에
   햇빛 물감 묻혀
   멋진 수채화
   그리시다

  수많은 삶의 모습들을 그려내는 시들도 있다. 김사인 시인의 <내 고향동네>라는 시를 소개한다. 이 시를 읽으면 한 편의 소설을 읽거나 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내 고향동네 / 김사인

   내 고향동네 썩 들어서면
   첫째 집에는
   큰 아들은 백령도 가서 고기 잡고 작은 아들은 사람 때려 징역에 들락날락
   더 썩을 속도 없는 유씨네가 막걸리 판다
   둘째 집에는
   고등고시한다는 큰아들 뒷바라지에 속아 한 살림 말아올리고 밑에 애들은 다 국민학교만 끄을러 객지로 떠나보낸
   문씨네 늙은 내외가 점방을 한다
   셋째 집은
   마누라 바람나서 내뺀 지 삼 년째인 홀아비네 칼판집
   아직 앳된 맏딸이 제 남편 데리고 들어와서 술도 팔고 고기도 판다
   넷째 집에는 
   일곱 동생 제금 내주랴 자식들 학비 대랴 등골이 빠져
   키조차 작달막한 박대목네 내외가 면서기 지서 순경 하숙 쳐서 산다
   다섯째 집에는
   서른 전에 혼자된 동네 누님 하나가 애들 둘 바라보며 가게를 하고
   여섯째 집은
   데모쟁이 대학생 아들놈 덕에 십 년은 땡겨 파싹 늙은 약방집 내외
   옛 마을은 다 물속으로 거꾸러지고
   산날망 한 귀퉁이로 쪼그라붙은
   내 고향동네 휘 둘러보면
   하늘은 더 낮게 내려앉아 있고
   사람들의 눈은 더 깊이 꺼져 있고
   무너지고 남은 부스러기들만 꺼칠하게 산다
   헌 바지저고리
   삭막한 바람과 때 없이 짖어대는 똥개 몇 마리가 산다

  이런 동네가 어디 있느냐고, 시인의 고향동네엔 이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만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은 실제에 가까울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은 과장일 수 있으며, 어떤 모습은 상상의 산물일 수도 있다. 시인의 고향동네에 이 시에 들어 있지 않은 유복하거나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을 수 있다.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고 있는 세상에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연민의 마음이 시인으로 하여금 이 시를 쓰게 하였고,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이 내 이웃의 이야기, 내 친구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는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기도 하고 한 편의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담기도 한다. 시의 세계는 무한하고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이나 감동 역시 끝이 없다. 시가 아름답고 귀하며 시를 읽는 것이 즐겁고 유익한 이유이다.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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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