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2)]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시를 많이 읽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종종 좋은 시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퇴임식장에서 읽을 시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분도 있고 퇴임하는 분을 위해 읽을 시를 추천해 달라는 분도 있다. 결혼식 주례를 할 때에 읽어주는 시도 있고, 영전을 축하하는 시를 보내기도 한다.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좋은 시를 추천하는 것은 좋은 노래,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영화, 좋은 책, 좋은 물건, 좋은 여행지, 좋은 운동을 추천하는 것처럼 쉬우면서도 어렵다. 시인도 많고 시도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그보다는 시를 읽는 사람의 기호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추천을 할 만한 시, 추천하고 싶은 좋은 시는 셀 수 없이 많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시는 좋은 시이다. 이 세상의 모든 노래가 좋은 노래인 것처럼...... 그래도 나에게 시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사람은 대체로 시를 잘 모르거나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일 것이므로 일단 쉬운 시를 추천한다.   그러면 어떤 시가 쉬우면서도 좋은 시인가?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고 쉽게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일 것이다. 그런 시도 매우 많다. 그래서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읽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과 사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 또는 느낌이 시의 주제 또는 소재가 된다. 그 중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의 소재와 주제는 꽃, 나무, 별, 달, 하늘, 바다 등 자연물과 사랑, 그리움, 이별, 아픔 등 삶 속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고 겪고 느끼는 것들이다. 

  최승호 시인은 시의 소재 또는 주제에 값을 매겨보는 재미있는 시를 썼다. 

  수평선 900원/ 구름 500원/ 아지랑이 1000원/ 저녁 어스름 800원/ 길 300원/ 마음 500원/ 나라 100원/ 풀잎 400원/ 아스팔트 100원/ 빌딩 100원/ 노을 900원/ 바다 700원/ 고래 600원/ 욕망 100원/ 하나님 200원/ ...... (중략) ...... / 물푸레나무 700원/ 침대 300원/ 폐허 600원/ 섹스 100원/ 냉이꽃 900원/ 허무 200원/ 밤 두 시 800원/ 개똥 900원/ 다이아몬드 200원/ 늑대 700원/ 공룡 400원/ 여울 1000원/ 하루살이 900원/ 바보 800원/ 쥐뿔 100원/ 은하수 600원/ 달빛 900원/ 조개껍질 300원/ 모래톱 1000원/ 파도소리 700원/ 섬 200원 ...... (하략) ......

  - 최승호, <시어(詩語) 가게에서>, 부분

  이 시를 보면 시인들이 즐겨 쓰는 소재 또는 주제는 사람이 손을 대지 않은 순수한 것들, 있는 그대로의 것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의 소재나 주제는 제한이 없다. 선택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쓰느냐,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을 잘 담느냐에 따라 좋은 시, 재미있는 시가 얼마든지 탄생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시 중 하나가 계절을 소재로 한 시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보고, 겪고, 느끼는 것을 일기를 쓰듯, 기도를 하듯 시에 담은 시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또 1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나 삶의 모습에 느낌을 담아 쓴 시도 아주  많다.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12월이 시작되는 날이다. 모든 새로운 시작은 설레임을 주지만,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달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생각과 느낌을 갖고 맞이하는 달이다. 그만큼 12월을 노래하는 시도 많다. 

  12월의 시 중에 오늘은 이해인 님의 시를 소개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느끼게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듬고 위로하고 격려하게 하는 좋은 시이다. 이 시를 함께 읽으면서 우리들 모두 아쉬움을 달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12월의 시 / 이해인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들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나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에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하는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 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 프로필 

- 1975 충남 예산고 졸업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95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교육학석사
- 2005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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