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1)]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우리는 왜 시를 읽는가? 그리고 왜 시를 쓰는가? 시를 써서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시를 읽는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자본과 생산과 소비, 인공지능과 지식과 정보가 제일이라고 여겨지는 시대에도 여전히, 아니 더욱 소중하다. 

  차옥혜 시인은 시를 쓰는 마음, 시인이고 싶은 마음을 아래와 같이 노래하고 있다. 

  비경제적이고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그래도 나는 시인이고 싶다.
  풀잎과 풀벌레의 노래
  구름과 별과 바위들의 눈빛
  받아 적고
  세상이 버린 것에서
  아름답고 귀한 것 찾아내고
  작고 가녀린 것들의 눈물에 젖어들고
  존재하는 것들의 평화에 입 맞추고
  외롭고 쓸쓸해도
  인간의 자존심 깃발처럼 펄럭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사는
  나는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 차옥혜,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고 싶다> 부분

  시는 소유와 소비에 이끌려 자아를 잃고 순수함과 참됨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자아를 돌아보게 하고, 자연과 그 속에 있는 작고 가녀린 것들의 소중함과,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좌절과 극복 등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의미와 소중함을 알게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귀결된다.
 
  교과서에서 배운 말 중에 ‘시는 사상과 정서의 등가물’이란 말이 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는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가슴으로 읽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논어에 나오는 ‘시경의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사특함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한 공자의 말씀도 생각난다. 누구든지 시를 읽으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착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언제부터인가 시를 즐겨 읽게 되었다. 혼자 읽기에 아까운 좋은 시를 만나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만날 때에는 훈계보다는 시의적절한 시를 함께 읽고 감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나를 만날 때에는 오늘은 어떤 시를 읽어줄까 기대하게 되었다.  

  페이스북, 카페, 밴드, 카톡 등 SNS로도 시를 퍼뜨렸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기뻤다. 내가 퍼뜨리는 시를 기다리는 사람도 생겼다. 사무실에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아껴 읽은 시집을 선물하기도 하고 좋은 시 몇 편을 인쇄하여 주기도 한다. 내가 나눠준 시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 읽고 있다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 ‘시 뿌리는 사람’으로 자부해 보기도 한다. 

  남의 시 1만 편을 제대로 읽으면 내 시가 써진다고 한 어떤 시인이 말했다. 시를 읽다가 내 시를 써보았다. 페이스북에 올린 습작시를 계간지에 실어주겠다고 한 페친 시인 덕분에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이번에 광교신문에 시 칼럼을 쓰게 되어 매우 기쁘다.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아니지만 시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훌륭한 시인들의 좋은 시와 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를 즐겨 읽고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산다면, 삶은 조금은 더 즐거워지고, 사람들은 좀 더 슬기로워지고,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 프로필 

- 1975 충남 예산고 졸업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95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교육학석사
- 2005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석사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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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