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와 몸싸움의 과거로 회귀하자는 말인가?

▲ 김진표 의원
25일 오전 민주당 소속 ‘민주적 국회운영 모임’ 의원들과 함께 새누리당의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움직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18대국회 민주당의 마지막 원내대표로서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던 의원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국회선진화법은 18대국회가 역대 최다의 날치기와 최악의 몸싸움 국회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여야 합의로 만들어낸 참회와 반성의 결과물이자,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통해 상생의 국회를 만들겠다는 대국민 약속의 상질물입니다. 또한 당시 저와 황우여 원내대표의 합의에 따라 6인소위원회를 구성해서 외국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만든 여야 타협의 상징물입니다.

더군다나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께서 비대위원장 시절 치러진 19대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 처리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은 새누리당 ‘국회바로세우기 모임’ 소속으로 법안 처리에 앞장섰던 황우여 대표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놓고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선진화법을 극단적으로 활용해 민생의 발목을 잡아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누리당은 한술 더떠 위헌심판 청구 운운하며 국회선진화법을 눈엣가시로 여기면서 아예 없애버리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대통령께 묻겠습니다. 대통령님, 여야 합의의 산물이자 새누리당의 총선공약으로 국민에게 약속했던 국회선진화법을 파기하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지금이라도 청와대는 속도전만을 앞세우는 독단에서 벗어나 과정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상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여당을 거수기로 국회를 통법부로 여기는 시대착오적 마인드, 제왕적 대통령제의 미몽에서 벗어나십시오.

황우여 대표님, 국회선진화법 처리를 위해 새누리당 동료 의원들을 설득하시던 노고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황우여 대표님께서는 “국회선진화법은 18대국회의 화룡점정이 되는 법안으로 민주주의 깃발이 국회에서도 휘날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본의원은 황우여 대표님의 초심과 소신이 변하지 않았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새누리당에 묻겠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을 ‘식물국회법’ 운운하고 심지어 위헌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러면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하고 국회를 다시 날치기와 몸싸움의 전쟁터로 만들자는 말입니까?

혹시 거대 여당이 소수 야당을 짓밟고 일방통행으로 날치기하던 시절이 그리운 것 아닌가요?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입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을 할 것을 촉구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을 후진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소수에 대한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소수를 존중하지 않는 다수결은 필연적으로 의회주의의 실종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51대 49의 구도에서는 51%의 민주주의만 실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국회의 논의를 거쳐 의안을 처리하도록 함으로써 야당을 지지한 49%의 의사까지 최대한 국정운영에 반영되도록 제도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회민주주의의 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다소 불편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민주주의 성숙과 의회주의 발전을 위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가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공존과 상생의 정치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장치입니다. 만약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정부조직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19대국회 시작부터 정부조직법 날치기와 몸싸움이 재연되었을 것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던 18대국회에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4대강 관련 법안, 언론악법 등 날치기 처리된 115건이 얼마나 많은 예산낭비와 폐해를 가져왔습니까? 국회선진화법이 있었더라면 지금의 이런 역작용은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점은 율사들이 넘쳐나는 새누리당에서 제기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 헌법 49조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가부동수인 때는 부결된 것으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행 국회법에 따라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국회 안에서 이뤄지는 거의 모든 표결은 다수결의 원리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하지만, 헌법49조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로써 특별정족수를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나라 의회에서 사안별로 의결정족수를 달리하여 의회의 자주성을 존중하자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과거 사학법 등의 처리 과정에서 어느 한 정당이 특정법안 처리를 미루면 국회가 마비된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안신속처리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속처리 대상으로 상정된 안건 표결 자체는 통상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뤄집니다. 
 

19대국회에서 지금까지 1,455건의 법률안이 여야의 대화와 타협에 따라 처리된 것도 국회선진화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국회선진화법은 민주와 민생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입니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의 예술입니다. 정부•여당은 지금이라도 날치기와 몸싸움으로 갈등을 증폭시켜 정치불신을 야기하는 강 대 강 상극의 정치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접고,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인 진정한 의회민주주의의 복원을 위해 상생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시급한 민생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2013년 9월25일 국회의원 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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