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박애, 생명존중’은 부천의 3대 정신

▲ 원경선 선생(사진)은 우리나라의 ‘유기농의 아버지, 국내 최초의 유기농부’로 불리는 원경선 선생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한국전쟁에서 죽을 고비와 큰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고 돈이 아닌 사람과 생명을 위해 살기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유일한 박사의 나눔 정신, 펄벅 여사의 박애 정신, 원경선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이 오늘날 부천을 있게 한 정신적인 기둥입니다.”

올해 부천은 시 승격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0년 동안 부천은 6만5000명이 살던 곳에서 90만 명이 사는 대도시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도시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에는 90만 시민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정신적인 토대가 뒷받침하고 있었다.

부천의 오늘날을 있게 한 정신적인 토대는 바로 유일한 박사의 나눔, 펄벅 여사의 박애, 원경선 선생의 생명존중이다.

유일한 박사의 ‘나눔’

1936년, 현재 부천의 심곡본동 일대에 근대적 제약공장인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내가 모은 모든 재산은 여러 사람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며 76세로 영면할 때 까지 ‘기업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유일한 박사가 유한양행을 세운 이유는 그 당시 대다수의 조선사람들이 약이 없어서 결핵 등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결핵약을 비롯해 진통소염제인 안티푸라민과 혈청 등을 판매하며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항상 윤리경영을 했다. 한 간부직원이 모르핀을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권유하자 그 직원을 즉시 해고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고 바른 경영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1929년 종업원들이 회사의 주인이 되는 종업원지주제를 한국 최초로 실시했다. 1952년에는 고려공과기술학교, 1964년에는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1971년 별세하기 전 친손주의 학자금 1만달러를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교육사업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기기도 하며 평생 나눔을 실천했다.

펄벅 여사의 ‘박애’
펄벅(Pearl S. Buck) 여사는 중국의 빈농이 대지주가 되는 왕룽(王龍)일가의 이야기를 다룬 <대지>로 1938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과 풀리처 상을 동시에 받은 대문호이다.

그는 문학뿐 아니라 사회사업에도 무수한 업적들을 남겼다. 7명의 아이들을 입양하여 사랑과 정성으로 키웠고, 다문화아동(당시 혼혈아동)들을 위한 웰컴하우스를 미국에 설립했다. 1965년 펄벅인터내셔널 한국지부(한국펄벅재단 전신)를 설립하였고, 경기도 부천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을 건립하여 그곳에서 한국전쟁고아들을 손수 돌보고 교육시키며 생을 마감한 1973년까지 사랑과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원경선 선생의 ‘생명존중’
우리나라의 ‘유기농의 아버지, 국내 최초의 유기농부’로 불리는 원경선 선생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한국전쟁에서 죽을 고비와 큰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고 돈이 아닌 사람과 생명을 위해 살기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후 1955년 현재 부천의 도당동에서 황무지 3만3000㎡를 개간해 풀무원농장을 마련해 전쟁고아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 풀무원 공동체를 창립했다.

원 선생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기존의 농사방법에 회의를 느꼈다. 그러던 중 일본기독농민모임인 ‘애농회’의 소식지에서 유기농 관련 글을 읽고, 일본의 유기농 선구자인 고다니 준이치를 만나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유기농을 시작했다.

1961년부터 2003년까지 열린교육으로 유명한 거창고의 이사장을 지내며 교육자로 이름을 날렸고, 국제구호활동과 환경운동까지도 외연을 넓혀 1990년 국내최초국제구호단체인 국제기아대책기구 한국지부를 설립하기도 했고, 경실련의 환경개발센터의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원경선 선생의 생명존중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이 세 분의 귀한 정신이 바탕이 되어 오늘의 빛나는 부천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며 “나눔, 박애, 생명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시민여러분과 함께 문화특별시 부천을 완성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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