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봉사활동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공존하는 경영 지속하고파

 

[경기IN이슈=지용진][화성=광교신문] 코로나와 이어진 경기침체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국민들의 지갑경제는 어렵기만 하고 이에 소상공인들의 부침도 눈에 띄게 보인다. 화성에서 안경사로서 30여년간을 일해온 동탄2 홍안경의 홍성철 안경사를 만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편집자 주>

 

- 본인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화성 발안에서 태어나고 여기 화성 동쪽 동탄에서 이렇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병점에서 안경점 사업을 2002년부터 시작을 해서 한 십오 년 내외 정도로 사업을 했고 거기서는 중심 상권에서 이곳보다 규모가 한 두세 배 정도 되는 안경원을 운영하다가 여기로 오게 됐습니다. 저희 안경원도 모든 소상공인들이 다 마찬가지인데 인건비도 많이 오르고 또 임대료 이런 것들이 많이 상승하다 보니까 수익률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런 상황에서 공교롭게 경희대학원 국제사이버대학교 3학년 편입을 해서 졸업을 하고 이후 경희대학원을 입학하게 됐는데 여기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이렇게 사업경영에 대해 배우게 돼서 지금 상황에서는 긴축경영에 들어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병점의 안경원을 2018년도에 정리를 하고 장비들을 가지고 동탄으로 건너오게 됐죠.

그 당시의 상황은 경제적 상황이 안좋았어요. 당시에도 안경원들이 많이 생기고 있었고, 병점에서 안경원을 운영할 때도 주변에 3~4개가 갑자기 생기기도 했어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인건비 상승, 월세 등 고정비 상승이 원인이기도 했고 거기에 과열 경쟁 이런 것들이 저를 병점을 떠나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됐어요.

이곳 동탄으로 와서는 병점에 비하면 짧게 운영을 하는데 벌써 여기서 6년이 됐고, 저도 안경을 통해서 지금의 배우자도 만나고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학업도 계속 해 왔고 일남일녀 자녀도 생겼습니다.

안경을 통해서 이렇게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안경업이란 일을 통해 사회와 공존하면서 살아갈 계획입니다.

 

- 코로나와 경기침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힘든 시기를 보내오셨는지요?

코로나는 뭐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아주 큰 천재지변이었잖아요. 저도 여기 다 마찬가지였지만 저희 안경 업계도 사람들이 여행을 안 다니니까 선글라스 부분, 그러니까 저희가 매출의 큰 축은 안경과 선글라스, 콘텍트렌즈인데 선글라스가 거의 판매가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매출이 이제 3분의 1, 2~30%의 매출이 떨어진 거죠.

그래서 저희도 좀 힘든 시기였죠. 매출이 당연히 떨어지니까 제 지인들도 많이 안경원을 떠나고 20% 정도의 안경원이 다 문을 닫았어요.

당시에 다행이라면 재난금이 대략 1천만원 내외 정도로 다양한 업종에서 평균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들면 월세가 한 200만원 정도인데 그래도 5개월을 버틸 수 있잖아요. 지원금에 의존하는건 아니었지만 매출 하락된 소상공인 영업점들은 그래서 그 지원을 받아 보탬이 됐던 상황이었습니다.
 

- 이제 코로나가 지난 상황에서 경기침체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경기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코로나 탈출해서 이제 좀 나아지겠거니 했더니 이제 불경기가 또 덮쳤잖아요. 금리도 두 배로 오르고 여기 외식도 지금 많이 줄었잖아요. 소비도 줄고 기름값도 올라, 전기세 올라 안 오른 게 뭐 월급 빼곤 다 오른 상황입니다.

저도 매출이 확 증가한 것도 아니고 매출이야 거기가 거긴데 이런 불황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뭐 많진 않잖아요. 방법은 그래서 저도 이 안에서도 또 움직였어요. 실은 여기가 6년은 됐는데, 한번 4년 전에 일로 이 자리로 온 거고 또 다음 달에 또 옆으로 또 옮길 거예요.

이유는 임대인과 협의조정이 잘 안 된 부분도 있고, 이 곳 옆 상가에 오래된 공실이 있어요.

제가 그리로 가면 월세를 조금 세이브 해 주겠다는 제안을 주셔서 옮기기로 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옮기는 것도 나름 살아남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월세를 이렇게라도 줄이면 이제 좀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또 생기잖아요. 1년이면 5~600 정도를 아끼는 거니꺼요.

저도 안경원을 한지 20여년인데 8번 정도를 이렇게 옮겼습니다. 한곳에서 계속 있으면 아무래도 망하게 되니까요. 제 신조가 뭐냐면 떠날 때 떠나고 1억 손해볼거 5천 손해보자입니다. 손실의 최소화를 위해서라면 옮기는게 옳은거죠.

그래서 그런 경영에 대해서 대학원을 통해 배우게 되니까 떠날 땐 떠나고 또 할 땐 하고 이런 걸 좀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이제 이 불황 불경기지만 살아남는 방법은 그래서 또 옮겨서 또 좀 고정비를 좀 줄이는 거죠. 그런 방법을 그렇게 해왔고 선택하고 있습니다. 타기책이랄까요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 많은 봉사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활동들을 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로타리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데 회비를 내면 이를 모아서 동사무소에서 선정해 주신 주변의 불우이웃에게 물품지원을 하고는 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20여분께 쌀과 생필품을 지원했구요.

저의 경우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안경을 로타리클럽과 함께 1년에 한 30여분께 지원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물론 동사무소에서 선정해 오신 취약계층 분들에 한해서입니다.

또 병점 중심 상가에서 상인회를 제가 같이 조직했거든요. 지금도 하고 있지만 이제 떠났으니까 저기 여기 일은 하지 않는데 제가 또 그 화성 소상공인연합회에 또 제가 이사를 맡고도 있는데, 그런 상인회 봉사활동도 한 2013년부터 한 5, 6년 했었었어요.

안경봉사의 경우 드림자원봉사센터가 있어서 이곳에서 활동도 했습니다.

대학원에 가고서도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했었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지속적으로 활동할 생각입니다.

요즘은 ESG 경영이 뜨잖아요. 그 어떤 사회에 기여하고 사회에 공존하는 그런 경영을 저는 해왔고 앞으로도 할 생각입니다.

 

- 30여년을 안경사로 보내셨는데 이에 대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어릴 때 꿈은 아니었는데 제가 이렇게 직업을 안경사를 선택한 게 자긍심이 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한 30년 동안 한 5만 명 6만 명의 그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준 거 해드린 거잖아요.

이 직업을 통해서 뭐 생계도 유지하고 있고 뭐 사회 활동도 하지만 이 안경업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어왔고 지금도 얻고 있고, 그래서 저는 이 안경일이 좀 일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이 일을 사랑하면서 또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광교신문 구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광교신문 구독자분들도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들 또 지역사회에 좋은 일 하는 사람들처럼 개인적인 여러 가지 일들이 잘 풀리시고 또 좋은 일들 많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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