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언론인이자 시민운동가다. 이 글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이 글이 족쇄가 된다면 그건 내 소명임을 받아들인다.

시민이란 이름이 어느날부터 고유명사가 됐다. 시민운동, 시민언론... 정작 시민은 실종됐다. 이제 그 시민이란 간판을 떼야 할 때다. 그래야 옳다.

시민이란 상표로 시민을 소외시키는 이른바 이름만 있지 실체는 없는 유명무실의 명분놀이는 이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알맹이가 없고 껍데기만 존재하는 사회의 양면 사이에서 진정한 시민운동과 시민언론을 고민한다. 이른바 시민의 상품화를 통해 자신의 명망과 신분상승을 꾀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이 경종의 글이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펜을 들었다.
 
다시 말하면 역설적이게도 나는 시민운동의 마지막 기대를 품고 감히 시민을 거론한다. 2013년 현재 민생은 파탄지경이다. 멈추지 않는 열차에 뛰어내려야 하는 심정을 아는가.
 
거대 자본과 이제 권력화 돼 버린 시민권력이 다른 것이 무엇일까. 절대권력은 썩게 마련인게 동서고금의 진리이고보면 이제 권력의 안팎에서 장기집권을 연장하는 시민권력은 더 이상 시민이란 신성한 이름을 상품으로 진열대에 놓지 말길 바란다.
 
거대 보수시장이 한국의 정치와 언론의 배를 불리고 있다면 진보의 바로미터를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좌파시장은 뜨내기 노점일 뿐이라고 애정어린 비판을 내린다.
 
아픔도 눈물도 애정도 잃어버린 진보는 다만 한권의 텍스트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권력 - 결코 시민사회 전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 은 진정한 내일의 시민운동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아니 스스로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운동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
 
우리는 90년대 '시민없는 시민운동'을 고민하고 새로운 대안 찾기에 골몰했다. 어느샌가 시민운동이 정치적 정략적으로 권력화의 길을 걸으면서 시민은 다만 주식회사의  이사도 아닌 일개 개미주주가 돼 버렸다.
 
실질보다는 허울과 형식으로 점철된 브리핑식 세미나식 포럼식 기타 등등. 한 번이라도 시민과 마주하며 그들의 손때를 닦아줬더라면 이런 비판에서 조금은 자유로웠지 않았을까.
 
전제하건대 이 글은 시민권력을 저격하고 있다. 시민사회 전체에 대한 경종의 글이지만 시민사회 전체를 매도하려는 건 아님에 추호 한 점의 거짓도 없다.
 
이 시대의 자화상 속에서 동료 시민운동가들의 피와 눈물과 애환의 한숨을 대신 표현하고자 한다. 당신은 이 영역에서 자유롭냐고 묻는다면 나 또한 그러한 책임에 직무유기를 해왔음을 고백한다.
 
시민운동의 에센스에 좀 더 몰입하고자 하는 자기반성의 발로이며 표리가 일치하지 않는 오늘의 시민사회에 대한 애정어린 쓴소리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진정성'이란 말이 유포된다. 진정성은 본질과 현상의 일치이며 성실한 일관성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 사회 인텔리의 자기기만과 위선의 역설적 현상이다. 진정성을 외치는 이들이 진정성을 상실한 것이다.
 
정치는 권력의 최상부에서 흔들린다. 시민권력 또한 자기 정체에 대한 강도 높은 반성이 없다면 자기괴리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라 본다.
 
새로운 소통과 과감한 변혁이 요구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당신들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식회사 '시민권력'에 부고장을 쓰면서 2013년 6월 6일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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