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 톺아읽기] 미분양 몸살 앓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4대강 개발 못지않게 수상쩍은 경제 살리기 대책이 나왔다. 정부가 오는 2012년까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고 보금자리주택 32만가구를 조기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두고 "서민들에게 값싼 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이자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기부양대책이고 일자리 창출 대책이기도 해 이른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맞춤형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보금자리주택 프로젝트는 크게 5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서민들이 집을 사지 못하는 건 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집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집값이 비싼 건 실제 수요를 웃도는 투기적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투기적 수요를 잡지 않는 이상, 다시 말해 여전히 부동산 투기가 돈벌이가 되는 이상 집값은 터무니없이 높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정부가 공급을 늘려도 서민들에게 내집마련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둘째, 보금자리주택은 로또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정부는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를 시세의 50~70% 수준에 책정하되 전매 제한기간을 7~10년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과거 판교 분양에서 봤듯이 아무리 전매제한을 둔다고 해도 일단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이 가능한 상황에서 청약 과열은 불가피하다. 집값을 잡기는커녕 32만가구에게 돈벼락을 안겨주는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걸 서민대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조선일보 8월28일 3면. 
 
셋째, 이런 식으로는 절대 '반값' 아파트를 지을 수 없다. 일반 발표는 했지만 서울 강남구 세곡동이나 서초구 우면동, 경기도 고양시 원홍동, 하남시 미사동 등 시범지구는 이제야 토지보상을 시작한 상황이다. 정부가 나서서 땅값을 올려놓고 투기세력을 불러들이고 있는 셈이다. 토지보상 비용이 급증하면서 분양가가 치솟고 주변 시세를 덩달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가능성도 있다.

넷째, 설령 분양가를 당초 계획에 맞춘다고 해도 여전히 턱없이 비싸다. 정부는 세곡동과 우면동의 경우 분양가가 3.3㎡에 1150만원이 될 거라고 밝혔는데 이 경우 99㎡면 3억4500만원이 된다. 이를 두고 "서민들에게 값싼 주택을 공급한다"고 홍보하는 건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정말 서민들 주거대책을 고민했다면 분양이 아니라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맞다.

다섯째, 환경파괴도 우려된다. 정부는 "그린벨트의 기능을 상실한 보전가치가 낮은 지역에 짓는다"고 설명했지만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4~5등급 지역을 모두 해제한 뒤라 보전가치가 낮은 그린벨트는 거의 없다. 환경이 훼손돼 보전가치가 낮아진 지역이 있다면 이를 원상복구하고 관리를 강화하는 게 바른 방향이다. 정부는 "그린벨트를 훼손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충분히 알리겠다"고 밝혔을 뿐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집값을 끌어내릴 의지가 있었다면 투기를 차단하고 개발이익과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보금자리주택의 경우도 분양가를 낮출 의지가 있었다면 미리 토지매입부터 끝내놓고 사업계획을 발표했어야 했다. 애초에 서민들 내집마련을 도울 계획이었다면 임대주택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인 10~35%까지 늘리는 게 최선의 해법이다. 우리나라는 이 비율이 3% 수준이다.

부동산 해법은 사실 굉장히 간단하고 명확하다. 종합부동산세를 당초 취지를 살려 단계적으로 강화하되 세수를 투명하게 활용해서 투기적 수요를 뿌리 뽑는 정공법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조세저항에 부딪히고 건설경기 침체도 불가피하겠지만 그게 앞으로 다가 올 부동산 거품의 붕괴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집값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다면 온갖 서민주거대책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매일경제 8월28일 사설. 
 
언론의 보금자리주택 관련 보도는 미묘하게 핵심을 빗겨나가고 있다. 비판을 하면서도 아무런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부 정책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조중동 등 보수신문들과 주요 경제지들까지도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부분 신문이 투기조장을 우려하면서도 공급확대에는 일단 찬성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급이 늘어야 집값이 내려간다는 해묵은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정부가 공급확대를 통해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를 차질없이 시행하는 것은 그동안 왜곡된 주택정책을 바로잡는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면서도 "남은 문제는 단기간에 싼값의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데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그 대안으로 "차라리 분양가 인하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분양가를 적정수준으로 책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 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아예 "과감한 공급확대가 집값안정 최선책"이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이 신문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를 철폐하고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집값을 잡으려면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한다"면서 "집값안정은 정권의 명운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과연 이 신문은 집값안정을 바라고 있을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경기진작을 위해 일정한 집값 상승은 용인한다지만 시기를 놓치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면서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궈지고 나면 백약이 무효임을 우리는 몇 년 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충분한 주택공급과 함께 주택시장으로 몰려드는 투기자금을 적절히 규제하지 않고서는 급등 분위기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겨레 8월28일 사설. 
 

한겨레도 "서민들로서는 싼 가격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면서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겨레 역시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 신문은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한 개발이익 환수, 부동산 세제 강화 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해법을 내놓는데 그쳤다. 투기를 억제하되 공급은 늘려야 한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주택 보급률이 지역에 따라 100%를 넘어선지 오래고 부동산 시장이 수요공급의 원리를 넘어 투기적 수요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언론이 간과하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미분양 사태의 여파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사실을 돌아보면 언론의 이런 건망증은 주목할 만하다. 중대형 평형이 아니라 소형 평형을 늘려야 하고 민간개발이 아니라 공영개발, 로또 분양이 아니라 장기임대를 늘려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무엇보다도 주택이 투기적 거래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 그 원칙을 위해 개발이익과 투기적 불로소득을 철저히 환수하는 제도적 절차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그게 서민들 내집마련을 돕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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