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헌
안용헌

[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전공자 혹은 애호가들에게 ‘클래식기타 작곡가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묻는다면 많은 이름이 나오겠지만 그중에는 대다수가 아마 페르난도 소르를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로 그 작품의 인지도가 압도적이나 에튀드 ‘월광’, 2중주 작품인 ‘위안’ 등으로도 애호가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이름이 ‘클래식’ 기타이듯 클래식기타를 이야기할 때, ‘클래식’, 고전 시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소르는 줄리아니, 아구아도 등과 함께 고전 시대 레퍼토리를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대표적인 작곡가로 작품성, 작품의 양 등의 측면에서 마우로 줄리아니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전공자들에게 ‘줄리아니 vs 소르’는 자주 벌어지는 토론 주제이기도 하다. 당시 고전 시대에 전 악기에 걸쳐 ‘기악 독주곡’이라는 바람이 불자 기타계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전보다 길고 큰 작품, 웅장하고 비루투오조한 작품에 대해 관심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줄리아니와 소르는 서로 다른 방법을 택했고 두 작곡가 간에 스타일 차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줄리아니 하면 긴 아르페지오, 마치 베토벤 음악을 모방한 듯한 큰 종지, 화려한 피날레 등 웅장한 음악을 떠올릴 수 있다. 반면에 소르는 화성의 색과 기타가 할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표현들에 초점을 맞추었고 고전 시대의 ‘대세’보다도 ‘소르’ 그 자체의 독창성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다.

물론 두 작곡가의 레퍼토리 모두 기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레퍼토리지만 ‘줄리아니 vs 소르’의 대답을 해야 한다면 지금은 페르난도 소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실 나는 평소에 줄리아니의 작품을 더 많이 연주한다. 줄리아니의 로시니아나 시리즈는 내 주요 레퍼토리지만 왠지 음악을 듣고 싶을 때에는 소르를 재생하게 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13년, 아직도 소르의 레퍼토리에서는 고전 시대의 뻔함이나 막연함이 아닌 특유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영롱하고 빛깔이 있는 화성, 그것이 내가 소르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이유이다.

페르난도 소르는 고전 시대 스페인 태생의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로 기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오페라, 오케스트라, 스트링 콰르텟, 피아노 목소리, 발레를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남겼다. 그는 초급자들을 위한 연습곡부터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는 소나타, 판타지, 변주곡까지 다양한 레벨의 작품을 남겼고 특히 그의 연습곡 시리즈는 기타 전공자들의 교과서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Fernando Sor
Fernando Sor

 

1778년 바르셀로나의 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가문의 분위기에 따라 직업 군인이 될 예정이었으나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를 만난 날부터 음악과 사랑에 빠졌고 그를 지지한 아버지는 소르에게 기타를 소개해주었다.

1808년, 20대에 결국 군인이 된 그는 대위까지 승진하였고 애국적인 가사와 함께 민족주의적인 음악을 남기며 거리 행진을 하는 순회 군악대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군의 패배 이후에 그는 프랑스 혁명 사상을 수용한 자들로 분류되면서 프랑스 점령군의 관리직을 맡았고 1813년 스페인이 프랑스를 물리친 후,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스페인을 떠나 망명하게 된다.

이때 소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경, ‘파리’로 거처를 옮겨 이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소르는 프랑스에서 ‘음악가’로서의 삶을 제대로 출발할 수 있었고 금세 뛰어난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1815년, 계속된 연주 활동과 작품활동 중에 프랑스가 더이상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느껴지자 활동 무대를 런던으로 옮기기로 마음먹는다.

런던에서도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명성을 얻었고 체계적으로 기타와 성악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오페라보다 발레가 더 큰 인기를 끌고 있었기에 이때 그는 발레 작품 ‘신데렐라’를 발표함으로 100회가 넘는 공연을 가지는 등 큰 흥행을 거두었다.

이후 1823년 모스크바에서 약 3년 정도 시간을 보낸 뒤 그는 남은 여생을 파리에서 보내기로 결심한다. 파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유럽 전역을 걸쳐 소르의 기타 연주는 큰 흥행을 이끌었고 그로부터 ‘기타’라는 악기의 대중적인 인기가 다시 살아날 정도로 그의 명성은 최고에 달했다.

우리가 아는 많은 기타 작품들이 이 시기에 작곡되었으며 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기 직전으로 그가 작품에 본인의 소신을 가장 강하게 담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Introduction and Variations on a Theme by Mozart-
Introduction and Variations on a Theme by Mozart

 

그의 대표작들을 짚어보자면 앞서 이야기했던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9 (Introduction and Variations on a Theme by Mozart)’가 가장 대중에 잘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 피리>에 등장하는 아리아 “Das klinget so herrlich, das klimget so schon!”을 주제로 한 변주곡으로 그가 생각하는 ‘기타’의 매력을 여실히 드러낸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이 외에도 다수의 주옥같은 소나타, 환상곡들이 존재하지만, 소르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리즈는 연습곡 시리즈 아닐까 싶다. 그는 Op.60, 44, 35, 31, 6, 29에 걸쳐 수십 개의 연습곡을 남겼으며 ‘Study’, ‘Lesson’, ‘Exercise’ 등의 다양한 시리즈 제목을 갖고 있다. 이 연습곡 시리즈의 대상은 초심자부터 기타리스트까지 넓게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날 Op.6이나 29, 31은 리사이틀 프로그램으로도 자주 연주되곤 한다.

이는 다른 악기의 ‘Concert Etude’처럼 연주회 프로그램에 사용되어도 손색이 없는 기타 레퍼토리의 ‘보물’이자 전공자들의 체계적인 학습을 위한 교본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르 작품이 연주될 때, 홀의 기분 좋은 울림이 좋다.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웅장하진 않아도 영롱한 울림 사이에 고요한 여백들이 그 시간을 값지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이 200년이 넘도록 연주되고 있는 이유 아닐까. 3평 남짓한 좁은 방의 적막을 뚫고 오디오에서 소르의 ‘위안’이 들려온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호한, 기분 좋게 졸린 새벽이다.

 

기타 연주자 안용헌 인스타그램: dragon_heon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yddyd113

저작권자 © 광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