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각자 처한 상황과 현실을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 알쓸신잡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

각자의 시각에서 서로의 생각을 맞추며 보다 객관적인 정보에 접근한다. 그렇다고 그 정보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고작 네 사람의 일치된 견해의 한 부분이다. 전문가의 소견이란 토를 달면 신뢰는 소폭 오를 터다.

사람은 AI도 기계도 아니다. 오류는 늘 따라다닌다. 실수도 할 수 있다. 우리사회의 단면을 학자, 작가, 기자 등이 출판물이나 매체를 통해 전파하지만 세상의 작은 부분에 대한 지식과 견해라는 범주를 만족시키는 정도다.

SNS는 이보다 더 깊을 수도 얕을 수도 있다. 정보의 선택적 취합이 필요한 이유다. 그중 사실에 근거한 정보의 진실성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퍼거슨은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처럼 껌이나 씹고 있을 순 없다. 여기서 철학과 맥을 짚는 일관성이란 덕목은 SNS의 신뢰를 높여주는 필수 요소다.

SNS의 기본적 미덕이 올바른 정보의 전달과 솔직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데 있다면 그 진정성은 가독성의 중요한 요소다.

저커버그는 최근 페이스북 사용자의 정보를 대거 유출해 비난을 받는 처지다. 페이스북이란 정보의 플랫폼에 대한 신뢰에 큰 흠집을 남기며 비난은 더욱 쇄도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망이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었다고 결론 짓기는 어줍다. 진화하는 관계망이 결국 우리를 통제하고 구속하는 멍에가 될 수 있음도 우리는 곳곳에서 보고 있다.

"따르릉"

70년대, 누군가 모를 이의 전화가 온다. 수화기를 들고 목소리를 듣고 통성명을 나눠야 그를 알 수 있다.

이 장면이 되려 신선하게 다가서는 건 뻔한 정보의 범람에 치인 현대인의 피로도에 대한 역설인 듯싶다.

SNS, 끊어도 괜찮다. 정신의 자유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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