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누구의 눈물을 흘리게 하나
4월은 잔인한 달, 누구의 눈물을 흘리게 하나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6.04.11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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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 속 4월 그 잔인한 기록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시인 T. 엘리엇(T. S. Eliot)의 연작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첫 소절은 너무나 유명하다. ‘황무지’는 파괴된 인간성과 문명을 비판하고 통찰해 나간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이 시의 첫 구절에는 먹먹함이 있다. 이 첫 구절이 이토록 가슴 속을 시리도록 파고드는 것은 우리네 민초들의 삶 자체가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4월은 피로 물든 역사다. 이 피의 얼룩이 전국 곳곳에 새겨져 있으니 이 시의 첫 구절이 더 절절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4. 3항쟁

4월은 1년 중 제주도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사실 사계절 중 언제 가도 좋은 곳이 제주도지만 봄날 노란 유채꽃 밭이 펼쳐지고 푸른 초목이 산들거리는 제주도의 하늘과 땅과 바다는 겨우내 움츠려 있던 기운을 한 번에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제주의 땅이 피로 번졌다. 지금으로부터 68년 전 제주에선 ‘반공’을 빌미로 한 국가 권력에 의해 이념과 무관한 민간인들의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다.

‘제주 4.3특별법’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사망자만 1만4000여명(진압군에 의한 희생 1만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764명 및 기타)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21%가 여성이었고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포함되어 있다. 아기들까지 죽음에 몰아놓은 주민 학살은 6.25 전쟁이 끝나는 시점까지 계속되었다. 학살의 대부분이 자행되었던 중산간에선 수십개의 마을이 주인을 잃었고 지금은 빈 터만 황량하게 남아 있다.

일제에서 해방된 기쁨도 잠시, 같은 민족에게 공산당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이들의 영혼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한풀이 춤이라도 한 판 추어 서럽고 억울한 한을 풀어야 하지 않을까.

제주도 전통예술공연개발원 ‘마로’는 4.3 당시 희생당한 영령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4.3 위령제’를 진행했다. 향로를 들고 춤을 추는 향로춤과 긴긴 천을 감고 상생을 기원하는 할망도리, 도살풀이 장단에 맞춰 크게 선을 그리는 지전춤으로 슬픈 영혼들을 달랜다.
 

4. 16 세월호 참사

우리에게 2014년 4월 16일은 경악과 충격, 그리고 알 수 없는, 믿기지 않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아직 채 피어보지도 못한 수많은 우리의 아들딸들이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왜 구조되지 못하고 선내에 가만히 있어야만 했는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29일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강원식 1등 항해사, 조준기 조타수 등 관계 증인들이 출석한 가운데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차 청문회가 열렸지만 진상 규명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이 와중에 증인으로 참석한 강혜성 당시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이 “회사의 지시로 선내에 대기방송을 했다”고 진술, 귀추가 주목되었다. 반면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퇴선 명령을 내렸다”는 앞선 진술과는 반대 진술을 벌여 논란을 불러왔다.

참사 2주기가 되었지만 세월호 인양 등 산적해 있는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고 있지 않다.
 

4. 19혁명

1960년 서울의 4월은 잔인했다. 19일 당일 서울에서만 하루 만에 1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1000여명의 시민들이 부상당하는 처참한 일이 벌어진다.

4월 19월은 이승만 정권의 부정한 탄생을 거부하는 시민들이 일으킨 혁명의 날이다. 그 해 3월 15일 마산 앞 바다에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한 소년의 시신이 떠올랐다. 그의 이름은 김주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데모사건'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 되었다가 발견된 그는 당시 나이 겨우 17세였다. 그의 죽음은 제2차 마산시위와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킨 4·19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가져오지만 연속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수많은 시민들의 피를 흘렸지만 조직화 된 지도력이 미흡했던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56년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는 이승만 전대통령을 ‘국부’(國父)라고 부르며 피로 돌려 받은 소중한 국민의 권력을 4.19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정치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그리고 다시 4월 13일 20대 총선

엘리엇은 당시 ‘황무지’를 쓸 때 자연의 순환 속에서 봄이 되어 다시 버거운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시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전쟁 후 황무지로 변해버린 서구 문명과 인간성의 파괴를 비판하며 불모지 같은 메마른 땅 위에 자애로운 신의 빗줄기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시인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모든 것이 황폐해진 땅을 보며 봄의 아름다움이 황폐해져 버린 땅과 인간에게 또 자연은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4월을 역설적으로 잔인하다고 느꼈으리라.

하지만 시는 단순히 비판과 통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하고 자신을 통제하여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시 말미에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그의 시처럼 4월의 봄날은 오늘도 살아야 하는 버거움을 우리의 어깨 위에 안겨 주는 잔인함을 보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슬픈 역사는, 이런 잔인한 4월은 오지 않게 하겠다는 우리 스스로의 다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다짐의 시작은 4월 13일 투표하는 것부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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