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아닌 ‘우리’의 정치를 위해”
“‘그들’이 아닌 ‘우리’의 정치를 위해”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정현진 기자
  • 승인 2016.03.2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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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언론=가톨릭뉴스지금여기> 인터뷰: 녹색당 비례대표 이계삼
▲ 지난 3월 20일, 부산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에 대한 주민투표소에서 만난 이계삼 후보. 밀양 주민들과 투표독려 활동을 하던 중 인터뷰를 진행했다.

녹색당 비례대표 2번 이계삼 후보(베네딕토).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던 그에게 국회의원 후보라는 타이틀은 ‘정치’에 대한 오랜 생각의 전복이었다. 국어교사에서 귀농을 선택하고,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기까지, 특히 밀양 송전탑 싸움을 통해 그토록 정치의 힘에 호소하고, 희망하면서도 정치는 그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싸움의 현장에서 그 어떤 어려움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치만큼은 스스로에게 쳐 놓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어느 순간 그토록 자신이 터부시하던 정치는 “금배지를 달기 위해, 그리고 한번 단 금배지를 계속 달기 위한 노력, 더러운 것, 사적 이익의 각축장”이라는,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공유하는 무서운 편견과 왜곡의 전모가 담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그 계기는 밀양 송전탑 싸움과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가 출마의 변에 적은 것처럼, 송전탑 반대 싸움의 모든 과정은 “국가와 자본이 그 원인을 제공하고 ‘정치의 부재’로써 완성된 고통의 파노라마”였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수없이 국회 문턱을 넘으며 비애와, 외로움을 느껴야 했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우리는 점마들 안 믿는다. 우리는 우리를 믿는다”고 외치는 할매들이 있었다. 앞선 장면이 사익을 위한 “그들의 정치”였다면, 할매들의 외침은 정당한 저항을 위한 “우리의 정치”였다. 그 지점에서 그는, “우리가, 내가 정치를 무엇으로 알고 있었는가”라고 성찰하게 됐다.
 

“‘정치’는 몇몇의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의 몫”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그 이상이 걸릴지,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머리’속에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에서 나와 ‘나 자신이 이렇게 해 보려 하는 것’이 희망이라는 것을 저는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출마의 변)

그의 출마를 두고, 송전탑 반대 싸움을 막던 경찰들, 송전탑을 찬성하는 주민 중 몇몇은 “거 봐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가 하려는 정치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정치나 하려고…”라는 말을, “결국 정치를 통해서…”로 바꾸고 싶다.

그는, 출마 전에는 오래 고민해야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다. 특히 송전탑 투쟁을 하면서 정치가 엄청나게 중요하고, 우리 삶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인식했지만, “그 일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고 내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정말 중요하지만, 나는 하지 못할 것이라고, 누군가 대신 해 주면 좋겠다고 여겼던 일을 하고 있다는 기꺼움 때문에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의 기꺼움이란, 낯선 일을 하는 고된 여정 속에서도 스스로 단단해지고, 한 사람의 민주주의자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가 함께하자고 손 내미는 정치도 그런 것이다. 우리 자신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 “어려운 시절, 온통 험지인 사회에서 겪는 좌절과 절망을 해결하는 시작이자 열쇠는 바로 정치공간”이라는 그는, “그렇게 중요한 정치를 더럽고, 나와 상관없고, 선거 때 투표만 하면 되는 것으로 정치공간 자체를 허당으로 만들어 둔 우리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또 “세상에 좌절하고 불만하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당 활동을 하고 시민으로서 스스로 싸워야 한다. 몇몇에 맡기고 응원하는 것으로 소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서, "내가 정치를 통해 어떤 사안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고, 일상의 정치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치 터부시하고 두려워하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

그런 맥락에서 녹색당을 선택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의석을 차지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가 주저 없이 녹색당을 선택한 것은 그의 이런 소신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원외정당이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이나 지위가 없지만, 녹색당은 명망가에 의존하고 그들에게 정치적 기회나 기대가 집중되는 이전의 정당과 다른 활동을 해 왔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정치’에 대한 의식, ‘정치 활동’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구성원 스스로 의제를 정해 활동가가 되고, 거리의 정당 연설회, 밀양 송전탑, 탈핵운동의 현장에서 풀뿌리 정치운동을 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그는, “당선 가능성을 위해 기존 세력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세력, 정치의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당락에 상관없이 나의 정치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민사회의 정치에 대한 의식 변화를 강조하면서 이번 필리버스터를 언급했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높은 벽이라고 생각했던 정치나 의회가 넘나들 수 있는 문턱이라는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 순간, 시민들은 거리가 아니라 의회로 모여들었고 이는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평가하는 그는, “정치공간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가 정치공간을 통해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정치적 교양이 됐다. 이런 가능성을 국회가 받아 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치인으로 새롭게 출발한 이계삼의 길을 물었다. 그는 “만약 낙선하더라도 정치를 터부시하고 두려워하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건강한 정치적 주체로 살 것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온 고향 밀양에서 풀뿌리 정당운동을 통한 지역운동을 비롯해 무엇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그런 ‘활동’을 하겠다고 답했다.

얼마 전 밀양 할매, 할배들과 장터에서 열었던 정당연설회에서 새로운 투쟁의 지평을 봤다는 그는, “밀양은 내 힘이고, 송전탑 투쟁에 대한 일말의 대표성이 내 정체성의 근거”라면서, “송전탑은 한국 사회는 물론, 나 개인에게도 변혁의 계기였다. 밀양의 열망과 연대자들의 힘으로 정치를 바꿀 수 있도록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 2013년 12월, 밀양 송전탑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한숙 씨의 빈소를 지키는 이계삼 후보. 수많은 고통을 함께 겪은 밀양은 그의 힘이다.

“바른 가치로 싸우는 주체들의, '덧셈의 정치'”

그의 선거본부 이름은 ‘탈탈+’이다. 탈핵, 탈송전탑 등 에너지전환 의제를 통해 함께 싸워 갈 주체들을 확장하는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다. 교육자였던 그는 교육분야 정책위원으로 공약을 최종 점검하기도 했다.

‘숨통을 트게 하는 정치’를 표방하는 만큼, 교육에서도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배움과 삶의 주체로서 숨통을 트도록 하는 구조적, 법적 개혁을 추구한다. 작게는 9시 등교시간과 강제 야간자율학습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에서 안전한 급식 보장, 또 크게는 교육부의 절대 권한을 쪼개 분산시킴으로써, 국정교과서 문제와 같이 교육부가 정권의 요구사항을 집행하는 하수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통해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 구분 없이 청소년들을 보살펴야 할 존재로만 보고 그 주체성과 성숙함을 보지 않았다는 과오를 확인했다는 그는, “청소년, 어린이는 어른의 보호와 교육 서비스의 시혜 대상이 아니”라며, “스스로 배우고 삶의 주체가 되도록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경계와 문턱을 허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청소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거나 어떻게 잘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는 권리의 주체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가로막은 벽을 허물기 위해 함께 싸우자는 태도가 필요하다면서, “청소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절망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온 사회가 가르치거나 치유해 주겠다며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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