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흑 고마워 똥깡아ㅠㅠ, 나에겐 너밖에 없구나∼!!’
‘흑흑 고마워 똥깡아ㅠㅠ, 나에겐 너밖에 없구나∼!!’
  • 승인 2011.07.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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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은이의 양평 산골에서의 텃밭 농사일 거들기 9회


요즘 같은 날씨엔 집에 있기도 버겁다. 짠순이(?) 엄마가 전기세 아끼느라 에어컨을 잘 안틀어주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던, 친구들을 만나던 차라리 카페에 가는 게 훨씬 더 낫다. 요새는 친구들과 만나도 멀리 다니지 않고 집 부근 경희대 대학로에 있는 북카페를 주로 이용한다. 어디 놀러 다닐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요즘 날씨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난다. 아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얘기부터 시작을 하냐고? 그 이유는 지금부터 알려드리겠다.
워낙 몸에 열이 많은 나. 여름이면 거의 반쯤 죽어지낸다. 이 뜨거운 여름, 유일한 낙이라곤 에어컨뿐이다. 하지만 양평엔 에어컨이 없다는 거!ㅠㅠ 냉풍기라는, 얼음을 넣으면 찬바람이 나온다는 기계가 있지만 찬바람은 무슨…. 선풍기는 강?약 조절이라도 되지만 이 냉풍기는 아무리 세게 틀어도 한여름 축 처진 강아지의 혓바닥 마냥 ‘매가리’ 없는 바람만 힘없이 흘려보낼 뿐이다.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갈수록 양평에 내려가는 일이 두려워지는 이유다.





선선할 땐 산책이라도 다니며 기분을 풀곤 했는데 요즘 같은 날씨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자동차 매연 가득한 서울보다도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미리 얘기하자면 난 에어컨이 없으면 머리카락 잘린 삼손이 돼버리고 만다는 사실…. 변명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하하)
금요일, 역시나 일찍 퇴근해 집에 도착. 비오는 듯 쏟아져 내리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가방 싸기 전에 샤워부터 한다. 그런데도 후덥지근하다. 벌써부터 양평 가기가 겁난다. ‘양평에 가면 분명 무지 더울 거야,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지’라는 다소 바보 같은^^ 속다짐을 하며 짐을 쌌다.
아빠가 오시고 나의 구세주(?) 에어컨을 튼 차를 타고 출발∼! 역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한껏 즐기며 뒷좌석에서 잠 속으로 퐁당∼!
문득 일어나보니 어라, 양평이 아니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빠가 에어컨을 끈 뒤 창문을 연 것을 잠결에도 귀신같이 알고 깨어난 거다.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 잠이 오질 않는다.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바람이 살갗에, 머릿속에, 심장에 달라붙는다.





그렇게 뜨거운 바람과 씨름하고 있자니 차는 어느새 양평읍내 마트에 도착. 오늘 저녁메뉴는 돼지고기 항정살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나. 뭐, 이미 수없이 얘기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게다. 소고기 등심과 돼지고기 삼겹살 구이는 텃밭에 심어 무럭무럭 자라는 쌈채소들 덕분에 질리도록 많이 먹었다. 이번에 언젠가 티브이프로그램 맛집 코너에서 본 환상의 부위 항정살에 도전! 미리 얘기하자면 씹히는 맛이 예술이었다^^!
장을 다본 뒤 양평 집에 도착했다. 짐을 옮긴 뒤 청소기를 돌리는 대신 대걸레를 잡았다. 청소기는 엄마의 몫. 저번 주에 약을 붙여놓고 가서인지 개미는 다행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미 때문에 차마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들이 있었다. 바로 하루살이와 새끼 잠자리들이다. 너무 작아서 그런지 방충망의 아주 작고 촘촘한 구멍을 통과해 들어온 놈들이 벽에 떼거지로 붙어있다. 덕분에 하루 종일 이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배가 무척 고팠다. 이제 신나는 항정살 구이 타임! 아빠는 밭에 나가 고기를 싸먹을 야채를 잔뜩 따오셨다. 그 속엔 싱그런 오이와 풋고추도 포함됐다. 올해 들어 첫 수확인 셈이다.





지글지글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나긋나긋한 항정살을 올리니 그윽하게 퍼져나가는 저 향기가 제발 빨리 입안에 넣어달라고 애원하는 듯하다. 청을 들어준다. 입안에 넣고 가만히 이빨 운동을 한다. 이 부드럽게 퍼지는 식감. 그렇게 한여름 밤의 즐거운 만찬은 계속됐다.
한껏 배를 채운 뒤 소화를 시키러 가자는 아빠의 제안에 따라 밤길 산책에 나섰다. 어두컴컴한 산책로. 논에는 벼가, 밭에는 고구마와 콩, 옥수수 등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한들한들 흔들리고 있다. 낮 시간 후덥지근했던 날씨가 밤이 되면서 불어오는 바람 덕인지 꽤나 시원하게 느껴진다. 콧노래를 부르며 슬슬 발걸음을 옮긴다. 산책로 전체를 한바퀴 도는 데 약 30분이 걸린다. 중간, 수풀과 나무들이 잔뜩 우거진 산 바로 아래 둥그런 묘가 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여름밤엔 가끔 이곳에 들르는 것도 피서의 한 가지 방법이 될 듯하다. 바로 한여름밤의 공포, 납량특집이다.^^ 집에 돌아와 수면제용 책을 펴놓고 있다 잠속으로 풍덩!





다음날, 역시나 뒤늦은 기상. 벌써 중천까지 떠오른 해의 기운 때문인지 숨이 턱턱 막힌다. 밥맛도 없다. 대충 아침을 때운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 좋은날! 왜냐고? 옆집 할머니께서 키우는 ‘똥개’가 새끼 세마리를 낳았는데 그중 한 마리를 골라가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전에도 계속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어미의 다소 지저분한 외모 때문에 애써 못들은 척했는데, 강아지를 직접 보고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보송보송한 털에 똘망똘망한 눈, 게다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까지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이름은 미리 정했다. ‘똥깡이’. ‘똥강아지’에서 따온 것이다.^^ 처음엔 헷갈려서 부르기 힘들었는데 자꾸 부르다보니 어감도 예쁘고 의미도 있는 것 같다.(하하^^) 똥깡이는 밖에서 키우던 개라 청결이 최우선. 마당에 커다란 리트리버종 개를 키우는 앞집 이웃의 개샴푸를 빌려 깨끗이 씻겨주었다.
오후엔 예방접종을 위한 약과 회충약, 똥깡이 밥 등을 사러 읍내에 나갔다. 돌아온 뒤 주사는 앞집 아저씨가 놓아주셨다. 이렇게 하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는 것보다 10분의 1은 싸게 든다고 했다.





집안으로 들어온 똥깡이는 사람의 손길이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자꾸 구석만 찾아 들어갔다. 소파 뒤에 숨은 채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언제쯤이나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내 입장에선 지나치게 친해지는 것도 사실 부담스러운 일이다. 똥깡이를 데려오기 전 고민했던 이유 중 하나다. 털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 잠깐만 강아지를 만져도 눈이 시뻘개지고, 재채기가 나고, 피부에 오돌토돌 돌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똥깡이를 키우며 면역력을 길러보겠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다짐을 해본다. 그렇게 둘째 날은 똥깡이와 하루 종일 노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마지막 날. 결국엔 아빠에게 한소리 들었다. 이번엔 3일 동안 엄마, 아빠의 어떤 일도 돕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는 새벽같이 텃밭에 나가 풀도 뽑고, 나무같이 큰 상추도 뜯고, 밭도 메느라 하루종일 바쁘셨다. 하지만 난 더운 날씨 때문인지 좀처럼 엉덩이가 떨어지질 않았다. ‘다음엔 땀 뻘뻘 흘리며 도울게요∼ㅠㅠ’ 속으로 외쳐본다. 아무리 그래도 기자로서 할 일은 해야 할 터. 처음으로 텃밭에 엉금엉금 기어나가 기사에 쓸 사진을 찍는다. 보니 감자가 거의 다 여물어가는 모습이다. 흙위로 돌출된 감자 몸뚱이가 꽤 묵직해 보인다. 가지도 꽤 크게 자라있고, 오이와 방울토마토도 무럭무럭 살집을 키우고 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 촬영을 마친 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엄마, 아빠보다 먼저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
저녁 6시 한창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아빠 서울 올라가는 길인데 똥깡이 토했고 회충 나옴, 빨리 들어오시길…”이라는 내용. 더 놀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똥깡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해서 잠시 망설이다 한 시간 정도만 더 놀다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시간이 되자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와 엄마는 아직 도착 전. 먼저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는 사이 도착하신 엄마, 아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빠가 버럭 화를 낸다. 올라오는 차안에서 똥깡이 때문에 잔뜩 고생을 하신데다 텃밭에서 뜯어온 많은 양의 야채와 다른 짐보따리들을 두 분이 5층 집에까지 올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 죄∼송==;







나는 의기소침해져서 얼른 짐을 정리하고 똥깡이 돌보기에 돌입했다. 일단 샤워를 한 번 더 시켜주었다. 물과 밥도 주었다. 그리고 방석과 박스를 이용, 집도 만들어줬다. 똥깡이는 자신 때문에 혼쭐이 난 나를 위로하려는 것인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애교를 부린다. ‘고마워 똥깡아∼ㅠㅠ, 너밖에 없구나.’ 우울했던 기분이 싹 달아난다.
똥깡이는 이후로도 몇 번이고 구토를 하는 등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앞으로는 양평에 내려갈 때마다 함께 할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옆집에 살고 있는 엄마와 재회할 시간도 만들어주고 동네 산책도 시켜줘야겠다.
이제부턴 다은이의 양평 이야기에 추가된 똥깡이 키우기 대작전도 ‘엄청난’ 관심을 가져주시길! 똥개라고 무시해선 안 된다.^^ 어찌나 영리한지 벌써부터 우리 집의 애굣덩어리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니까.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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