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과 현실에 시달리는 쌍용차노동자

쌍용자동차 노동자 최창의(가명) 씨는 3주째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최창의 씨는 지난 5일 경찰이 도장1공장을 장악할 때 부상을 입었다.

몸의 부상보다 최창의 씨를 괴롭히는 것은 마음에 남은 후유증이다. 아직까지도 싸이렌 소리나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놀란다고 한다. 최창의 씨가 점거농성 때의 긴장감을 떨쳐버리려 해도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깊은 잠을 자려 노력해도 가면상태로 누워있다고 한다.

점거농성 당시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뒤 최창의 씨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규찰을 서지 않고 쉴 때도 수시로 들리는 헬기 소리와 경찰의 함성 소리가 그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언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긴장감이 컸다.

"입원하고 나서 한 번은 간호사가 저녁에 주사를 놓으려 병실에 들어왔어요. 잠이 들었는데 간호사가 옆에 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주먹이 올라가서 간호사를 때릴 뻔했어요. 그 뒤 간호사에게 저녁에는 웬만하면 들어오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  최창의(가명) 씨는 점거농성의 고통을 잊으려 해도 몸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출처: 노동과 세계/이명익 기자]

사측이 쏜 새총에 맞아 오른쪽 손가락이 부러진 복기성 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복기성 씨는 지난 3일에 부상을 당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다 6일 노사합의 뒤 공장을 나와 입원했다.

"공장에 있을 때는 아픈지도 모르고 있다가 공장을 나오니 통증이 느껴지더라고요. 상처는 많이 아물었지만 갑자기 울화통이 터질 때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몇 번 신경안정제를 맞기도 했는데 몸이 늘어져서 지금은 그것도 중단했어요"

점거 농성 뒤에도 끝나지 않는 고통

쌍용차가족대책위가 27일 최창의 씨의 병문안을 왔다. 안부 인사를 나눈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퇴직 신청서를 쓰냐, 안 쓰냐'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쌍용차 노사는 8월 1일 이후 기준으로 농성참가자 640명 중 58%에 대한 정리해고를 합의했다. 실무교섭으로 정리해고 대상자를 정해야 하지만 실무교섭은 파행을 거듭했다. 결국 실무교섭은 결렬됐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무급휴직을 신청하자"고 했다. 최창의 씨는 무급휴직을 신청할 지 희망퇴직을 신청할 지 고민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하면 단 얼마라도 퇴직금이 더 나오기 때문이란다.

희망퇴직이냐 무급휴직이냐를 고민하는 이야기를 듣던 이정아 씨가 하늘을 쳐다봤다. 그녀의 남편은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정아 씨는 "점거농성할 때는 몸이 힘들어도 내일 더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이 들면 힘든지 모르고 살았어요. 투쟁이 끝나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더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만삭인 그녀는 다음 달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구속된 남편은 그녀 옆을 지킬 수 없다.

이영진(가명) 씨는 자식 때문에 더 걱정이다. 6개월 간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나누는 대화 때문에 가슴이 더 아프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 딸이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누구 아빠는 잘리고 누구 아빠는 회사에 계속 다닌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점거농성을 벌였지만 쌍용차노동자와 가족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답답한 현실과 투쟁의 후유증을 겪으면서 77일의 투쟁이 후회되지 않았냐고 최창의 씨에게 물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아내와 아이들의 미래를 걸고 당당히 싸웠는데 후회라뇨. 정말 최선을 다해 싸울 만큼 싸웠어요. 다만 억울할 뿐이죠. 8월 1일 지부장이 조합원들에게 교섭이 될 것 같다고 했어요. 회사와 이야기가 되고 있다는 말이었죠. 근데 교섭은 그 때 되지 않았죠. 정부가 뒤에서 밀어붙이라고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마루타인가요. 정리해고 해보고, 테이져건, 고무총도 써보고. 그런 게 억울해요. 정말 회사를 살리기 위한 정리해고였다면 쉽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어요"

전리품이 된 점거농성자

경찰은 5일 도장1공장을 장악한 뒤 "6일까지 점거를 풀면 선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은 노조의 점거농성이 끝난 후 노조 등에게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외부세력 조직적 개입 집중수사 등을 펼쳤다. 경찰은 지금까지 쌍용차 점거농성과 관련해 현재까지 71명을 구속했고 2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쌍용차사태는 단일 노조사건의 최대 구속자를 기록했다.

▲  쌍용차 점거농성자들은 쌍용차 사태의 전리품이 되버렸다. [출처: 미디어 충청]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지난 11일 열린 실국장회의에서 "쌍용차사태에서 성과를 보인 경찰과 소방공무원이라 표창, 포상하라"고 지시했다.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27일 직원간담회에서 쌍용차사태와 관련해 "경기경찰이 슬기롭게 마무리해 국가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고 자찬했다. 상황이 이정도면 정권과 여당에게 점거농성자는 쌍용차 사태의 전리품이나 마찬가지다.

쌍용차노동자들의 처지는 산자(비해고자)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영진 씨에게 찾아 온 산자는 공장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고 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관리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잔업근무, 월차사용 등도 관리자의 눈치를 봐야단다는 것이다. 회사는 노사합의 당시 파업참가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했지만 파업 참여자들 대다수가 대기발령 상태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쌍용차는 6일 합의 뒤 예상과 달리 일주일만인 13일 조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일이주일 빠른 조업재개였다. 도장공장의 도장용 도료가 굳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점거농성 당시 회사는 도장공장에 전기를 끊었지만 노조는 비상용발전기를 이용해 도장용 도료가 굳는 것을 막았다.

최창의 씨는 희망퇴직을 고민하고 있지만 "현장 이야기를 들으면 '함께 살자'는 노조를 배신한 산자들이 대가를 받아해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산자의 어려움에 도움의 손길을 어렵더라도 노조가 내밀어야죠"라며 회사와 동료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점거농성을 끝난 뒤 쌍용차노동자들은 공장 밖에 있지만 지금도 쌍용차 주변에 끝나지 않는 투쟁과 삶은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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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민중언론 '참세상'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기사를 포함한 사진의 저작권은 '참세상'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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