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미디어창]두 전 대통령 죽음이 산 현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

수개월 만에 두 명의 전 대통령이 죽음을 맞이했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운의 정치 지도자가 됐지만 또 한 사람은 그의 죽음을 몹시 애도하며 ‘현직 대통령’을 향해 마지막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다 떠났다. 심지어 ‘내 몸의 반쪽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는 표현으로 당시의 절절한 절망감과 낭패감을 전했다.

심신이 쇠약해지는 노년기에는 정신적 충격이 사망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칭기스칸도 장남 주치의 죽음에 망연자실하며 정신적 상처가 깊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릇된 정보로 주치에 대한 오해를 잔뜩 품고 있던 상황에서 아들의 비보는 자신의 용렬함을 한없이 꾸짖게 했다. 말에서 떨어진 것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라 하더라도 수개월 전 사랑한 아들의 죽음은 그를 한없이 약하게 만들었음직하다.

죽은 자는 그 죽음 자체로 살아남은 자들에게 교훈을 남긴다. 민주화를 위해 한 평생을 바치는 과정에서 지역적으로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로부터 호, 불호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전대통령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는 것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 김대중 전 대통령. ⓒ이치열 기자 
 
다만 현 대통령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 현 대통령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지만 인간적 배신감 같은 것은 그 전에 토로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망 일보 직전까지 격한 용어로 ‘민주주의 후퇴’를 분노하며 ‘행동하는 양심’을 촉구했다.

나이가 들면 귀도 순해지고 입도 고와진다는데 80대 전 대통령은 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피를 토하듯 이 대통령에게 훈계와 당부, 경고를 토해냈을까. 그 메시지와 의미를 한 번쯤 정리하고 되새기는 것이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고 산 자의 의무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선진화, 국민 통합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첫 번째 메시지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강조했다.

법치를 내세운 마구잡이식 토끼몰이, 경쟁과 발전을 내세운 일방적 국책사업 추진, 국민과의 소통을 무시하는 불통의 인사정책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았지만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연설문에서 ‘이 대통령에게 강력히 충고한다’ 면서 “지금 국민이 걱정하는 건 과거 50년 동안 피흘려 쟁취한 민주주의가 위태위태한 점을 매우 걱정합니다. 민주주의는 나라의 기본입니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메시지는 인권보호에 대한 중요성이다.

언론이든 수사기관이든 법원이든 인권보호는 민주주의 실현의 가장 기본적 필수사항이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의 죽음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커녕 매일같이 쏟아내던 검찰의 과잉친절의 수사브리핑, 이를 확대, 왜곡하며 여론재판으로 낭떠러지로 몰고간 언론의 합작품이다.

심지어 ‘논두렁에 박연차가 선물한 고급시계를 버렸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한없는 절망감과 인간적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공영방송이라고 하던 KBS마저 관영방송으로 전락하여 검찰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문제제기는커녕 확대 왜곡 재생산해내는 데 보조를 맞췄다. 노 전 대통령 재임때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던 조중동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물어뜯었다. 지나간 신문의 지면을 한 번 찬찬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신문 지면 곳곳에 증오와 질시, 모욕주기식의 보도가 넘쳐났다.

김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공개하지 못했던 마지막 연설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만일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 문상객의 십분지 일이라도 그럴 수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런 예우할 수 없다, 증거도 없이 매일 신문에 발표해서 정신적 타격주고 수치주고 이렇게 할 순 없다고 50만만 그렇게 소리를 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이웃 사람들이 희생된 데 대해 가슴 아파하고….”

한국사회는 언론도 검찰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난과 가차없는 수사를 펼친다. 권력의 힘이 사라진데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이 최소한의 예우는커녕, 인권조차 무시하며 몰아붙인다. 현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이들의 책임이 가볍지않다.

세 번째 메시지는 민주주의는 피없이 성취되지 않는다는 점의 역설이다.

노 전 대통령은 말이 아닌 몸으로 부엉이 바위에 자신을 던짐으로써 민주주의 제단에 자신의 붉은 피를 뿌렸다. 인권의 가치와 민주주의 절차의 중요성, 부당한 권력의 압제에 이 이상 강렬하게 웅변할 수는 없다. 김 전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제가 마음으로부터 피맺힌 심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독재자가 칼날을 휘두르면서 백수십 명 죽이고, 그렇게 얼마나 많은 사람 죽였습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그분들의 죽음에 보답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 위해 우리 할 일을 다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 행동할 때 누구든지 사람들은 마음 속에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손해를 보고 피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희생없이 소중한 민주주의는 성취되지않는다는 역설이다. 고개를 숙여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강렬한 메시지, 민주주의의 회복과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한 각자의 반성과 다짐, 각오가 있을 때 이 나라는 진일보할 것이다. 이 가운데 현직 대통령이 중심이 돼야 한다.

  
 
 
김창룡 교수는 영국 런던 시티대학교(석사)와 카디프 대학교 언론대학원(박사)을 졸업했으며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 겸 국제인력지원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1991년 걸프전쟁 등 전쟁 취재 경험이 있으며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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