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존엄사’ 확정 판결에 관한 논평

대법원은 21일,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가족이 세브란스 병원을 상대로 낸 연명치료 중단청구 소송에 대해 존엄사를 인정한 원심판결을 유지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1,2심 재판부가 국내 최초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를 추정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대법원은 '존엄사'의 새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대법관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사건을 회부하고 공개변론을 거쳤다.

그리고 오늘 대법원은 존엄사 인정 확정 판결을 통해 우리사회의 존엄사 논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매듭짓는 전환기를 마련하였다. 경실련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경의를 표하며, 정부와 국회에 조속한 존엄사의 법제화를 촉구한다.

경실련은 그동안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갖가지 기계장치를 부착해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토록 하는 관행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한 법제화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리고 제도도입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현재 우리 사회에서 수용 가능한 법제화의 틀을 마련하여 이미 국회에 입법청원한 바 있다. 이는 제도도입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추상적인 논쟁수준에 머물게 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동안의 논쟁을 종식시키고 실질적인 논의로 전환하기 위한 사회적 요구를 담은 제안이었다. 그리고 제도를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대상과 기준, 그리고 적용 방식과 절차 등을 규정함으로써 제도가 악용될 소지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기준과 방식을 규정한 입법안이 올해 초 국회에 발의되었으나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입법화를 위한 절차를 빠르게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지난 서울대병원에서 공개한 자료와 같이 말기 암환자의 사망과정에서 환자 가족의 요구에 의해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고 있다. 서울대 병원에 의하면 암환자 656명의 사망 과정에서 436명(85%)은 환자 가족들의 심폐소생술 거부를 의료진이 받아들여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에 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사를 미리 밝히도록 공식화 했다.

이는 진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연명치료 중단을 서울대 병원이 인정키로 한 용기있는 결정으로 박수를 받아 마땅하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고 해도 현행법상 불법으로 환자 가족이 고소하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데 그 한계가 있다.

서울대 병원의 용기있는 행동조차 현실과 법 제도간의 괴리와 입법부재로 인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그 피해가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으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이상 이러한 혼란을 우려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의 법적 의료적 제도적 장치의 구축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는 시기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제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랜 시간 아무런 책임있는 대안을 내지 못하는 사이 이로 인해 고통받는 다수의 환자와 환자가족이 있음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말기상태나 죽음이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 회복불능의 환자에게 의료가 해줄 수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기계에 의존해 연장하기보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국민의 선택은 분명히 보장되고 존중되어야만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의미없는 생명연장을 위한 조치를 하지 않도록 의사 표시한 것을 의료진이 수용한 것과 같이,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사전에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 이를 존중하여 생을 자연스럽게 마감할 수 있도록 그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존엄사 법제화를 안락사 허용이나 자살충동을 부추기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존엄사법제화의 논의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러한 그 어떤 시도도 결코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

다시한번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문제에 대해 강조하며, 회복불가능한 환자의 연명치료중단 결정이 환자의 생명에 대한 가치관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강조한다.

* 이 글은 시민단체 '경실련'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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