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된 재능교육 농성장에서 방송차로 농성 이어가

2009년 4월 24일 오후 3시.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비닐이 덮인 천막 안에는 유명자(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 지부장), 정난숙(대교 지부장), 김성희(조합원), 조연정(조합원) 네 사람이 농성 중이었다.

금요일이라 오전 집회가 끝난 농성장은 평온했다. 오후 2시엔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이 주최하는상암동 한솔교육 앞 집회가 있었다. 강종숙 전국학습지산업노조위원장과 황창훈 경기 본부장은 검찰 조사가 예정돼 있었다. 많은 학습지 노조 관계자들은 다른 일로 바빴던 날이다. 네 명의 여성조합원만 남았던 농성장은 평소와 같았다. 이날 날씨는 비를 예고해 하늘이 잔뜩 흐렸다.

▲  재능 농성장을 철거하고 있는 철거반 [출처: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 지부]

3시가 조금 넘어 갑자기 남자 두 사람이 천막 안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그들은 “구청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농성장 철거를 직감한 유명자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 지부장과 세 사람은 밖으로 달려 나왔다.

농성장 밖 인도는 이미 20여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몇 명은 벌써 현수막을 철거했고 천막을 칼로 찢고 줄을 끊고 있었다. 유명자 지부장의 눈에는 농성물품을 수거할 트럭 두 대와 사내들이 타고 온 봉고차가 들어왔다.

“우리 물건이야, 못 가져가.”

그녀는 건장한 남자들을 막아섰다.

“까불지마 우린 선수야. 까불다 죽는다” 철거반원들이 던진 짧은 욕설의 뉘앙스와 표정에는 살기가 엿보였다. 공포와 위협을 느꼈다. 이어 누군가 이야기 했다 “빨리 해치워.”

그제야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1미터 짜리 톱도 눈에 들어왔다.

[출처: 학습지 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함께 있던 세 명도 같이 저항해 봤지만 농성장의 철제 프레임은 순식간에 드러났다. 유명자 지부장은 "니네들 다 쓸어갈 거면 우릴 죽이고 가라"라고 막았지만 철거의 담당자로 보이는 자가 "치워 버리고 빨리 작업해"라는 답변을 돌려주었다.

어느새 비가 내렸다. 거리에 내동댕이쳐진 농성 물품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번이 열 한 번째 농성장 철거다. 그 중 아홉 번은 재능교육 회사 구사대가 직접 철거했다. 열 번째와 열 한번 째는 구청에서 직접 철거했다. 사전 통보도 전혀 없었다. 지난 3월 4일 10번 째 철거 때는 사무국장이 혼자 있었다. 혼자라서 저항이 어려웠다. 철거반은 천막을 비롯해 주요 물품들을 순식간에 가져갔다. 이번에는 여성이 4명 있었다. 그나마 중요한 물품이라도 챙겼고 물건 파손도 제지해 봤다. 사진도 찍었다.

유명자 지부장 눈에 비친 철거반 가운데는 종로구청 직원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용산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TV에서나 봤을 법한 재개발 용역깡패 같은 사람도 보였다.

철거를 당하는 그곳엔 사람이 없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30여 분만에 농성물품은 트럭에 대부분 실려졌다. 순간 정난숙 대교지부장이 트럭에 올라 농성 물품을 꺼내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본 유명자 지부장도 트럭위에 올라가려 했지만 철거반 4-5명이 달려들어 내동 댕이 쳐졌다. 누군가 말했다. “그냥 출발해. 가다 경찰서에 버려.”

차는 급 출발했다. 차위에 서 있던 정난숙 지부장은 위태롭게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트럭이 출발하고 보니 여전히 용역들은 틀로 세워두었던 앵글을 자르고 접고 사용하지 못하게 부수고 있었다.

농성장 철거는 그렇게 40여 분만에 끝났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한 명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두 사람은 빗속에서 남은 물건이라도 챙기고 있었다.

[출처: 학습지 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출처: 학습지 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지부장은 순간 아차 싶어 재능교육 정문 앞으로 달려갔다. 보통 천막을 철거하고 나면 곧바로 방송차를 견인해 가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차로 갔더니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언제나 철거가 있는 날이면 이랬다. 유 지부장은 방송 차에 올라타 차를 지키며 이곳저곳에 철거 당했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5시경 정난숙 대교 지부장이 혼자 멀지 않은 혜화 지구대에서 항의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작정 트럭에 올라타 혜화 지구대 앞까지 실려 간 정난숙 지부장은 그곳에서도 농성물품을 지키기 위해 트럭에서 버텼다.

지구대에서 나온 한 여경이 정난숙 지부장을 끌어내리려고 트럭에 올라탔다. 여경은 "철거반의 요청에 의해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트럭에 용역반 7명이 올라왔다. 7명의 남성이 그녀를 끌어 내동댕이 치는데 여경이 같이 끌면서 내동댕이 쳤다. "어떻게 여경이 같이 철거반과 함께 여자 하나를 끌어내느냐"고 따지자 여경은 "업무 수행일 뿐"이라고 대꾸했다. 그러고는 지구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때부터 학습지 노동자들의 기나긴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됐다. 정 지부장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해 여경에게 항의하려고 했으나 경찰은 보내주지 않았다. 그녀는 “여순경의 얼굴을 봤으니 당신 행동이 정당하다면 이름과 소속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정난숙 지부장은 비를 홀딱 맞고 지구대 앞에서 항의했다. 여경이 없다고 지구대 경찰은 발뺌했다. 형사과에서는 그녀에게 고소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지구대에 고소하겠다고 들어가 민원인으로서 진술서를 쓰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여경의 이름을 모르니 고소도 할 수가 없었다. 정 지부장은 그때부터 지구대 안에서 여경의 신원을 파악하기 전에는 못 돌아간다고 버텼다.

결국 혜화경찰서 정보과와 형사과 경찰들이 왔다. 여경의 이름과 소속 하나 물어 보려고 한 것인데 경찰 조직이 움직인 것이었다. 공개 사과를 요구했을 뿐인데 다 몰려왔다. 경찰은 그녀를 두고 업무방해라고 했다.


유명자 재능교육 지부장은 방송차를 지키다 5시경 정난숙 대교 지부장이 혼자 혜화 지구대에서 항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지구대로 달려갔더니 10여 명이 지구대 밖에서 항의를 하고 있었다. 지구대 입구는 7-8명의 경찰관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었다. 유 지부장이 안에 들어 가겠다고 하자 경찰은 “지구대 안에는 진술할 수 있는 사람만 들어 갈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안에서 이미 10명이 넘는, 익히 얼굴을 알고 있던 혜화경찰서 정보과, 형사과 형사들이 보였다. 정난숙 지부장이 혼자 지구대 안에 형사들에 둘러싸여 있을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게 대치하다 지구대 안에 들어가 항의를 했지만 결국 강종숙 학습지 산업노조위원장을 비롯해 노조 간부와 조합원 7인이 연행됐다. 유명자 지부장과 정난숙 지부장도 모두 연행됐다.

유명자 지부장은 너무 화가 나고 억울했다. 자신을 붙잡은 여경들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격렬히 저항했다. 손이 찢기고 손에서 피가 흘렀다. 여경 서넛이 붙었지만 몸부림이 심하자 남자형사가 유 지부장의 뒤에서 가슴 쪽을 끌어안고 상체를 잡았다. 놀라서 뒤를 쳐다 보니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정복을 입은 경찰이었다. 순간 그녀는 명찰을 움켜쥐었다. ‘김혁0’ 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명찰을 움켜쥐자 키가 큰 그 남자가 뒤로 돌아섰다. 그 순간 유명자 지부장은 경찰을 향해 외쳤다. “김혁ㅇ 너 두고 보자.”

그래도 여경들은 다시 그녀의 양팔을 잡고 상체를 들어올렸다. 이미 사지가 다 붙잡혔다. 몸부림은 계속됐고 윗옷의 속옷이 다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몸부림을 쳤고 앞쪽에서 다리 쪽을 들고 가던 여경들이 먼저 빨리 끌고 가 버리자 팔을 잡고 있던 여경들이 손을 놓쳤다. 유 지부장의 머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졌다. 이렇게 세 번이나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왼손 집게손가락에서는 피가 떨어졌다. 그녀의 검지와 약지 손톱에는 다음날 아침에도 피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녀는 미니버스에 실려 갔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경찰은 밖에 대기하고 있던 119에 그녀를 옮기지 않았다.

▲  유명자 재능교육 지부장은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다 힘이 없어 기자회견 내내 앉아 있어야 했다.

▲  부숴지고 비에 젖어 폐허가 된 농성장

함께 끌려온 강종숙 학습지노조위원장이 미니버스의 창문을 열고 바깥에 있는 시민에게 외쳤다 “지금 구토하고 실신 직전인데 119에 태우라는 요구를 경찰이 묵살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이 응급실에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의경과 여경이 강 위원장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내 창문이 닫혔다.

유명자 지부장은 결국 혜화 경찰서까지 와서야 구급차로 옮겨 타고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CT촬영을 하고 이상이 없다고 하자 경찰은 잘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다시 경찰서로 끌고 왔다.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조서를 쓰고 불구속으로 나온 시간은 아침 6시경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그녀는 돈암동에 있는 노조 사무실에 가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비가 온 뒤 살짝 개인 25일 아침 기온은 7도밖에 안됐다. 흐린 하늘은 여전했고 온몸이 쑤시고 아픈데 날은 더욱 쌀쌀하게 느껴졌다.

경찰서 정문을 나오면서 그녀의 머리엔 기나긴 15시간 사투가 그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날은 추웠고 온몸이 안 쑤신 곳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기가 막혔다. “농성장을 철거하려는 철거반과 동조한 여경의 신원확인만 하겠다고 한 일이 무슨 폭도인 것 마냥 싹쓸이 해 연행해 간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 기가 막혔습니다” 그녀는 그때 심정을 그렇게 말했다.

25일 오전 11시 학습지산업노조는 혜화경찰서 앞에서 폭력연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오수영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이 구호를 외치려하자 혜화경찰서 정보계 직원이 구호를 외치면 집회라고 제지한다. 순간 연행됐던 그녀들의 입에서 욕이 나왔다. 얼마나 힘든 밤을 지샜는데 기자회견에서 구호도 못 외친단 말인가.

한 시간여 눈을 붙이고 다시 기자회견장에 나온 유명자 지부장은 기자회견 내내 앉아서 기자회견장을 지켰다. 그녀는 인터뷰 중에도 온몸이 쑤시고 힘이 없어 힘들어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인도 변 재능교육 농성 터는 폐허가 돼 있었다. 재능 지부는 방송차량을 농성장 터에 세웠다.

“오늘은 농성을 못하겠네요?”

“오늘은 일단 여기에 방송차를 세워놓고 농성을 유지한 다음 내일 다시 농성장을 세울 겁니다”

벌써 몇 사람은 농성장의 잔해를 정리하고 있었다. 빗방울이 또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날 내내 맨몸으로 맞았던 비가 또 내렸다. 남들은 단비라고 하는데 부숴져버린 농성장에 내리는 비는 서러운 눈물만큼 차가웠다.

▲  학습지 노조는 폐허가 된 농성장을 정리하고 방송차 안에서 농성을 준비했다.

25일 오후 혜화경찰서 형사계에 연행 이유에 대해 묻자 형사계 관계자는 지구대 업무방해로 연행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업무방해가 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어제 혜화지구대 연행과 관련한 형사는 모두 아침 10시에 교대하고 퇴근한 상태”라고 알려줬다. 연행돼 풀려난 학습지 노동자들은 앞으로 불구속으로 계속 수사를 받는다.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 지부는 1999년 특수고용직이라는 상황에도 재능교육교사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재능노조는 당시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8년 회사는 일방으로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노조 전임자까지 해고했다. 위탁계약을 거부한 노조 간부들에게 해고 통보하는 등 탄압하자 재능교육 지부는 혜화동 본사 앞에서 500여 일 가까이 농성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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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민중언론 '참세상'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기사를 포함한 사진의 저작권은 '참세상'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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