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 보호 대상은 성적 자기결정권

1970년 대법원이 '부부간 강간죄' 성립을 부정한 이래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16일 외국인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로 기소된 40대 남편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현행법상 강간죄의 대상은 '부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 중인 부녀'는 이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배우자의 성관계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며 부부간 성관계를 '의무'로 보고 있다.

1999년 UN 인권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부인 강간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데 대해 우려를 표했다. 2005년엔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 등 국회의원과 여성단체가 '부부 강간'에 대한 처벌을 명문화하는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해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1991년부터 부부 강간죄의 면책 조항을 폐기했다. 미국도 결혼이 부인 강간에 대해 면책받는 것이 아니라며 부부간 강간죄를 인정한 바 있다. 독일은 부부 강간죄의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한 피해자 개념을 '타인'으로 확대해 남편도 부부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게 했다.

송란희 서울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혼인관계에서 성폭력은 이전부터 당연히 처벌해야 했던 것으로 이 판결은 당연하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죄목이 특수강간임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논평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부부간에라도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법원이 최초로 인정해 준 것으로 대한민국 여성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이어 "인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국적과 인종, 성별을 막론하고 그 어떤 예외가 있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I
I
* 이 기사는 민중언론 '참세상'과의 사전 협의에 따라 게재하고 있으며 기사를 포함한 사진의 저작권은 '참세상'에 있음을 밝힙니다.
저작권자 © 광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