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IN이슈=지용진] 운영하고 있는 매체를 통해 만평을 그린다. 소재는 자유다. 우연찮게 그리게 된 게 수백 편을 그리게 됐다.

여러 상상을 펼친다. 시사적인 부분도 그리지만 가급적 따스한 얘기들로 채우려 했다.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앞서 쓴 내용들도 삶의 내용들이다.

살아가는 데 이것이 정답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도식적으로 계산해 살 수는 없다.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는 게 인생이다.

거창하지 않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한 1년 준비하면 되려나 모르겠다. 그간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늘 새 기대를 채우지만 이제 중년의 여정은 그렇게 욕심으로 채우지는 못한다.

서울에서 30년 또 경기도서 20여년을 살고 있다. 나의 약사다. 한 지역에 적응하기도 힘든 과정이 있었다. 생활권이 다르고 지역적 특성 또한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월급을 받지 않는 자유직업인으로 15년을 살았다. 한때는 지역 최고의 연봉을 받는 언론인이었지만 지금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해야 한다.

뒤늦게 경영대학원을 입학했다. 많이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아직 채울 것이 많다는 겸손함을 배웠다.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존경하는 교수님들을 비롯 쟁쟁한 선후배 원우님들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50의 중반에 느끼는 가장 큰 자극이었다. 향수 가게에서 굳이 향수를 사지 않아도 향수 냄새가 난다. 그렇게 대학원이란 곳에 의의를 찾고 싶다.

앞선 칼럼에서 문화대통령의 출현을 꿈꿨듯 지역에 문화의 새싹을 틔우고 싶다. 그래서 대학원을 선택하게 됐지만 꼭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자족하지 않고 스스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의를 통해 배움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새로운 지식의 탐구는 즐거움 그 이상의 메시가 되고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

80년대를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80년대의 기억은 뇌리 속에 깊숙이 박힌 기억의 편린들로 채워졌다. 그 희망들로 20대를 보내고 30대에 이르러서야 하나씩 버리게 됐다.

그래서 온전한 서른의 내용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이십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이도 먹었다. 경험은 나를 채웠지만 지식에 대한 욕구는 진행형이었다. 학문은 학문의 전당에서 치러야 한다는 사실은 의미 있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팬데믹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고 삶의 희망을 부여잡기 위한 사투는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인류의 삶의 질을 강팍하게 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미 내일을 향한 대항로를 출항한지 오래다.

많은 이들이 SNS를 통해 소통하면서 되려 더 가까워진 측면도 느낀다. 사람은 무엇보다 소통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채널의 소통을 열면서 가능성을 늘 타진하고 있다.

대면 비대면 대화 속에서 내일을 살 지식의 식량을 비축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세상의 퍼나미넌은 결국 철학과 인문의 지평에 연결돼 있다는 지혜로운 이의 말씀처럼 거대한 문화라는 범주에서 우리는 한 세대를 사는 동시대인이라는 데 동의한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더 넓게 지구촌의 100년 후를 내다보는 건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향후 10년 20년의 과제를 살피는 것은 좀 더 구체적이겠다. 

그래서 소통하고 교류한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이를 가감 없이 전하는 데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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