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 PROLOGUE

안용헌
안용헌

글을 쓴 지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있진 않았다. 대부분 무기한 연기되었거나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졸업식 없는 졸업을 마치고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를 걷는다. 그마저도 얼굴이 가려진 사람들뿐이다. 사람들은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재밋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심리테스트’를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려놓았다. 덕분에 많은 지인들이 내 글을 봐주었다. 안정되지 않은 삶 속에 사람들은 연주회장으로의 발길을 끊었고 연주자들은 스스로 연주를 취소하고 대다수가 강제적인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나 또한 이렇게 긴 휴식기와 칩거 생활은 걸음마 떼고 처음인 것 같다. 코로나 여파로 많은 이들이 집에 있을 지금, ‘전염병’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고야 ‘채찍질 고행단’ (1812-14)
고야 ‘채찍질 고행단’ (1812-14)

인류의 역사에 ‘음악’만큼이나 ‘전염병’이라는 키워드도 늘 함께 해왔다. 14세기 가장 두려운 전염병으로 알려졌던 ‘흑사병’은 80~90%에 육박하는 치사율로 몇 세기 동안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온 세상을 슬픔에 잠기게 했다. 당시 예술가들도 자신의 작품 속에 생채기를 남기곤 했는데, 위 그림은 전염병이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하여 자신들의 몸에 채찍질을 하는 ‘채찍질 고행단’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되려 그들은 비위생적인 활동과 채찍질 상처에 의한 염증 등으로 흑사병의 숙주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전염병을 퍼뜨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지속되는 긴 슬픔과 혼란은 유럽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주었고 ‘르네상스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사람들은 종교 아래에 있어 가려져 있던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세상이 병원입니다.

아이들을 포함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심한 고통으로 요람에 누워 있습니다.

사람은 죄의 병균을 모든 사람에게 전염시키고 있습니다.

아! 병균들이 저의 사지에 퍼집니다.

불쌍한 저는 어디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누가 고통에 있는 저를 도울 수 있을까요?

누가 저의 치유자이고, 누가 저를 회복시킬까요?’

 

위는 18세기 바로크 시대 음악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칸타타 BWV 25번 ‘제 살은 성할 데 없고’ 중 레치타티보 파트 가사 중 일부이다. 당시에도 아직 중세 ‘흑사병’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던 시기였으며 이처럼 작품에서도 사회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나타나곤 했다. 물론 ‘흑사병’과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크게 다르다고는 하지만 200년 전 ‘모든 세상이 병원이고, 사람들이 죄의 병균을 전염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가사가 현재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 없게 느껴져 씁쓸하기도 하다.

 

병든아이 (1885-86)
병든아이 (1885-86)

 

‘나는 이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의 주제에 몰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쳤다.

작품에서 앉아 있는 인물은 나 자신은 물론, 내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대변한다.’

-Edvard Munch-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결핵’의 그림자가 유럽 예술계 전반을 덮었다. <절규>로 잘 알려진 위 그림의 작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는 어머니와 누나를 ‘결핵’으로 인해 떠나보낸 이후 평생 ‘질병’과 ‘죽음’에 대한 많은 작품들을 남겼고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도 아내를 결핵으로 잃은 슬픔에 작품을 남겼다. 이 병은 우리가 잘 아는 피아니스트, 프레데리크 쇼팽(Fryderyk Chopin)의 사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2014년 바르샤바 성당을 통해 공개된 쇼팽의 심장이 담긴 병을 본 여러 의사들이 ‘결핵’이 아닌 ‘심낭염’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의 사인이 150년만에 다시 미궁으로 빠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결핵’은 독일 사망원인의 7분의 1, 영국 사망원인의 4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강력한 전염병이었기에 많은 의사들이 ‘결핵’이라는 진단을 내려도 의심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핵’은 가까운 시대 음악가들의 작품에서도 자주 등장하였고 대표적으로 베르디(Giuseppe Verdi)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가 ‘결핵’ 환자였으며 푸치니(Giacomo Puccini)의 ‘라 보엠’의 여주인공 미미도 ‘결핵’ 환자로 등장했다. 음악, 미술 외에 ‘죄와벌’, ‘레미제라블’ 등 문학에서도 ‘결핵’은 시련의 소재로서 사용되곤 했다.

이후 20세기 음악사에 자주 등장한 병으로 ‘디프테리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랑훼즈 협주곡’으로 유명한 스페인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는 ‘후천성 디프테리아’에 의해 유아 때 시각을 잃은 채 99세의 나이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러시안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여동생도 이 병에 의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Mahler : Kindertotenlieder - Songs on the Death of Children) 연가곡집의 원작 시인 뤼케르트(Friedrich Rückert)는 ‘디프테리아’에 의해 두 자식을 잃고 슬픔에 빠져 400여편에 달하는 많은 시들을 남겼고 비극적이게도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또한 연가곡집을 발표하고 3년 후 ‘디프테리아’에 의해 딸을 잃었다. 그는 딸의 죽음의 예언이 되어버린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발표를 후회했으며 이후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망상과 강박에 빠지게 됐다. 이처럼 ‘전염병’은 거의 모든 시대 예술가들의 삶 속에 늘 도사리고 있었으며 그들의 세상을 빼앗음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들은 실의에 가득 찬 현실에서도 ‘예술’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아픔을 소재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이들은 잠시 밖에 놀러나갔을 뿐이라고

아이들은 곧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날씨는 화창하고, 불안해 할 것 없다고.”

-Friedrich Rückert-

“아직 나의 때는 오지 않았다.”

-Gustav Mahler-

 

새로운 연주 취소와 함께 아침을 맞는 요즘이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 지인들도 마찬가지며 늘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며 기획하고 추진하던 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시간이 많은 이들을 열정에 대한 회의감이라거나 무기력증 따위에 빠지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 시간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을 이어가야 한다. 어둑어둑 거실인지 침실인지 모르겠을 만큼 좁은 방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 후줄근한 옷들에 가려진 좁은 바닥이 보인다. 청춘을 즐기라는 사람들도 참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조용한 대학가의 3월이다.

기타 연주자 안용헌 인스타그램: dragon_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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