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현
안용헌

[광교신문=안용헌의 '기타르티아데']

- PROLOGUE

우리가 사랑하는 작곡가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곁에는 그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늘 함께 했다. 슈베르트는 가진 천부적인 재능에 비해 독립적으로 음악활동을 이어갈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친구들은 이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슈베르트가 자신의 곡을 발표하고 연주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으며 다양한 분야의 젊은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살롱 모임, 요즘의 하우스콘서트를 만들어 그를 후원하였다. 곧 모임은 점점 활성화되었고 음악뿐만 아니라 시, 미술, 문학, 연극에 대한 이야기까지 폭넓게 토론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들은 그 모임을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 ‘슈베르트의 밤’이라고 불렀다.

#1 Romance de Amor

평소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음악을 주제로 한 칼럼을 써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집필 제안을 받게 되었고 대망의 첫글은 ‘클래식기타’ 하면 누구든지 알 수 있을만한 곡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마음먹었다. 고민하던 찰나 기타계 불후의 명곡, 수많은 기타인들의 흔한 멘트 ‘나 로망스는 칠 줄 알아.’의 그 ‘로망스’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연주링크-

우리가 아는 ‘로망스’의 원래 제목은 ‘Romance de Amor’로 ‘사랑의 로망스’라는 뜻의 스페인어이다. 프랑스 영화 “금지된 장난(Les Juex Interdits, 1952)의 주제곡이자 기타의 거장 나르시소 예페스(Narciso Yepes)의 연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로망스 작곡가에 대해 ‘영화 주제가를 예페스가 연주했으니 예페스다.’, ‘19세기 스페인 기타리스트 루비라가 작곡했다.’ 등등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사실 지금으로서 가장 정확한 표기는 ‘작자 미상’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정확한 작곡가를 알 수 없는 스페인 민요를 누군가 편곡했으리라는 것이 가장 진실에 근접하다는 뜻이다.

기타를 전공하며 수많은 ‘나 로망스 칠 줄 알아.’를 만나보았다. 수를 세자면 예술고 시절부터 대학까지 50은 거뜬하리라. 그렇다면 ‘왜 로망스인가?’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는데 내 생각에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와 ‘난이도’에 있다. 애호가들에게 ‘로망스’는 흔히 1절과 2절로 나뉜다. 곡이 단조(minor)와 장조(Major)로 이루어져 있어 이 중 단조 파트를 1절, 장조 파트를 2절로 부르는 것인데 사람들 대다수의 머릿 속에 ‘로망스’ 하면 보통 1절 도입부를 떠올리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부분이 가장 쉬우니 이렇게도 친절한 곡이 없다. (‘나 로망스 칠 줄 알아’ 50명 중에 45명은 2절을 칠 줄 몰랐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조 파트의 존재를 아는 청자도 적기에 자신 있게 칠 줄 안다고 말하기도, 증명하기도 용이한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들에게 이런 스테디한 레퍼토리는 고마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당신이 TV, 백화점 등 어디선가 들어본 그 음악은 보통 해당 악기의 대가가 녹음한 음반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혹여나 한음 두음 나가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대가 연주에 익숙해진 청중의 머릿속은 ‘음 이건 기억 속에 없는데?’ 하며 분주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레퍼토리를 계속 사랑하는 이유는 ‘브라보’를 자아내는 데에도 이만큼 좋은 작품이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저마다 그 음악, 그 순간의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이라는 매개체는 종종 그렇게 형용하기 힘든 감정을 쉽게 요약해주곤 한다. 마지막 음을 보내고 적막을 마친 순간 사람들의 눈과 손뼉이 이야기해줄 것이다.

기타 연주자 안용헌 인스타그램: dragon_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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