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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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현
  • 승인 2019.07.12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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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현의 시와 삶 (27)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의 <청포도>는 우리 모두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아름다운 시, 7월을 대표하는 시이다. 길지 않은 이 시에 곱고 아름다운 시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장, 마을, 청포도, 하늘, 바다, 돛단배, 손님, 청포, 포도, 은쟁반, 모시 수건등 명사와 푸른, , 하이얀, 고달픈등의 형용사, ‘주저리주저리, 알알이, 곱게, 함뿍등 부사들이 그것이다. 그 중에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어들이 많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평화로운 삶, 넉넉한 삶의 터전, 희망의 나라에 대한 동경을 그리고 있다.

 

<청포도>에는 푸른 바다가 나온다. 바다는 하늘 아래에서 가장 넓은 영역이다. 푸는 바다는 꿈의 세계이고 넓은 세상이고 이상향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넓고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큰 꿈을 꾸고 삶의 영역을 넓혀왔다. 미지의 세계인 바다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넓고 깊은 포용이 있고 풍부한 생명체들과 모든 것을 품어 새롭게 만드는 싱그러운 생명력이 있다. 여름은 바다의 계절이다. 휴가철에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찾는 이유는 단지 시원한 물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꿈을 찾고 바다가 주는 포용과 원초적 생명력을 맛보고 새 힘과 위안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광활한 바다는 한편으로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을 무한에의 도전이나 험한 인생 여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많은 시인들이 바다를 노래한다. 최승호 시인은 <시어 가게에서>라는 재미있는 시에서 수평선, 바다, 고래, 모래톱, 파도소리, 조개껍질, 섬 등 바다와 관련된 시어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양광모 님은 <바다의 교향시>에서 해, 바다, , 갈매기를 의인화하여 바다 풍경을 재치있게 노래하고 있다. 이해인 님의 <바다일기>도 바다, 수평선, 모래, 바위, 파도, 갈매기를 통해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옥진 님은 <기도>에서 작은 것도 한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한다. 오광수 님은 <사람이 산다는 것이>에서 인생 여정을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야 함을 가르친다. 오세영 님은 <바닷가에서>에서 인생길을 가는 것이 어려울 때 바닷가에 가서 파도와 수평선, 일몰, 섬을 바라보면서 평안과 충족과 의지를 배우라고 격려한다.

 

바다의 교향시 / 양광모

 

해라는 놈, 사랑 좀 할 줄 알더군

붉은 노을 연가 하늘에 적어놓더니

슬쩍 바다의 품으로 안겨들잖아

 

바다라는 놈, 이별 좀 할 줄 알더군

발그레 상기한 얼굴 말갛게 씻겨

훌쩍 해 허공으로 떠나보내잖아

 

섬이라는 놈, 외로움 좀 즐길 줄 알더군

한번쯤 뭍으로 찾아갈 법도 한데

낮이나 밤이나 제자리 꿈적 안 하잖아

 

사랑에 지치면 바다가 되자

이별에 지치면 섬이 되자

외로움에 지치면 해가 되자

 

오늘도 떠나가는 뱃꼬리 맴돌며

날아갈까 앉을까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라는 놈, 그리움 좀 즐길 줄 알더군

 

바다일기 / 이해인

 

푸르게

살라 한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내 굽은

마음을 곧게

 

흰 모래를 밟으며

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바위를 바라보며

내 약한

마음을 든든하게

 

그리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마음

 

갈매기처럼

춤추는 마음

 

기쁘게

살라 한다.

 

기도 / 김옥진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나를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일지라도

한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스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 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그리 살게 하소서

 

철저한 고독으로 살지라도

사랑 앞에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하게 살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사람이 산다는 것이 / 오광수

 

사람이 산다는 것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은

집채 같은 파도가 앞을 막기도 하여

금방이라도 배를 삼킬듯하지만

그래도 이 고비만 넘기면 되겠지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 삽니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이렇게 비 오듯 슬픈 날이 있고

바람 불듯 불안한 날도 있으며

파도치듯 어려운 날도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견디지 못할 일도 없고

참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다른 집은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생각하지만

조금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집집이 가슴 아픈 사연 없는 집이 없고

가정마다 아픈 눈물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웃으며 사는 것은

서로서로 힘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서 / 오세영

 

사는 길이 높고 가파르거든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아라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하나 되어 가득히 차오르는 수평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자가 얻는 평안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어둡고 막막하거든

바닷가

아득히 지는 일몰을 보아라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고이는 빛이

마침내 밝히는 여명,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자가 얻는 충족이

거기 있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

바닷가,

가물가물 멀리 떠 있는 섬을 보아라

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

스스로 자신을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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