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26)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숲으로 가면 / 차홍렬

 

숲으로 가면

노래 하나로 사랑할 줄 아는

한 마리 새가 되렴

 

숲으로 가면

실바람에도 가슴을 여는

한 송이 풀꽃이 되렴

 

숲으로 가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한 줄기 시냇물 되렴

 

숲으로 가면

아침 이슬에도 미소 짓는

찬란한 샛별이 되렴

 

본격적인 여름, 7월이 왔다. 여름 장마가 시작되고 이 장마가 지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올 것이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고 쉼을 얻기 위해 산과 숲, 강과 바다로 휴가를 떠날 준비를 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강과 바다보다는 산과 숲이 눈에 익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심 가까이에 있는 집에서는 바로 눈앞에 제법 큰 산이 보이고, 한 시간 남짓 걸으면 울창한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그 산 봉우리에 오를 수 있다. 계절 따라 변하는 숲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 숲속을 걸으면서 고향의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나로서는 참으로 즐겁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문가들은 숲의 경제적 가치를 이것저것 헤아리며 높이 평가한다. 어렵게 살던 과거에는 숲은 땔감나무와 목재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었고, 홍수를 막는 방재 역할도 작지 않을 것이다. 생활양식이 크게 바뀌어 문명의 이기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숲은 그런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더 소중한 쉼과 치유를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숲을 찾아간다. 다행히 전국 방방곡곡에 휴양림과 산림욕장이 많이 만들어져 좋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

 

숲은 생태계의 보고이다. 숲에는 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고 옹달샘과 개울이 있고 계절 따라 피어나고 열리는 꽃과 열매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 터 잡고 살아가는 수많은 짐승들과 새들과 벌레들도 있다. 숲에는 실개천을 흐르는 고운 물소리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바람소리, 새들의 명랑한 노래와 풀벌레 소리가 있고 흙내음과 꽃향기가 있다. 숲에는 생명이 있고 꿈이 있고 기쁨이 있다.

 

시인들은 숲을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을 캐내고 다듬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리가 함께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시로 빚어낸다. 시인들이 숲을 보며 많이 생각하고 그리는 것들은 나무들이 제 자리를 지키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 숲이 사람들을 품어 마음을 쉬게 하고 위로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모습 등이다.

 

최금녀 님의 <숲의 가슴에 안겨>와 신혜림 님의 <숲은 어머니의 마음>은 우리를 품어주고 위로하는 숲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강은교 님의 <>은 숲의 주인공인 나무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동시처럼 노래하고 있다. 주로진 님의 <여름 숲에 들다>는 장마 지난 후의 여름 숲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임보 님의 <>을 읽으면 웅장한 나무들의 모습 앞에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삶의 모습을 돌아보고 겸손해지게 된다. 산림청장을 지낸 조연환 님은 평생 산림행정과 산림정책에 헌신한 전문가답게 나무, , 산을 점층법으로 활용한 <나무처럼 살아요>라는 고운 시를 주례사로 쓰셨다.

 

숲의 가슴에 안겨 / 최금녀

 

숲에 닿으면

순리를 받들며 흐르는 물이 반갑다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놀던

풀꽃과도 눈을 맞추며

포근하게 안겨오는 초록 안개

초록 습기와 살을 비빈다

습기 속의 흙내음이 더운 김을 뿜어오고

허브 향기로 스미는 초록의 알갱이들이

열린 내 몸 속으로 달려와 나를 애무한다

바람이 입었던 내 옷가지들을 하나씩 벗겨내고

알몸의 나는 듬직한 바위에 누워

나뭇가지 사이에서 뛰노는 햇살에 얼굴을 묻고

숨이 가쁘다

두 눈을 감고

나는 흰구름 속으로 날아간다

 

몸 속의 조리개 열어놓고

숲으로 가는 날은

나와 숲이 만나 몸을 푸는 날이다

위로받고 싶은 날엔 숲으로 간다.

 

숲은 어머니의 마음 / 신혜림

 

숲 속에는

젖 향기가 느껴집니다

젖 향기는 태초의 그리움입니다

 

숲 속에 있노라면

요람 같은 평화로움이

나를 취하게 합니다

풀내음 속에 어머니의 박가 분이 생각납니다

하얀 모시치마 저고리 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어머니 냄새

 

숲은 어머니처럼

언제나 너그럽게 꽃을 키우고

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숲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인자하고 따뜻합니다.

 

/ 강은교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나무 하나가 흔들리면

나무 둘도 흔들린다

나무 둘이 흔들리면

나무 셋도 흔들린다

 

이렇게 이렇게

 

나무 하나의 꿈은

나무 둘의 꿈

나무 둘의 꿈은

나무 셋의 꿈

 

나무 하나가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둘도 고개를 젓는다

옆에서

나무 셋도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이

나무들이 흔들리고

고개를 젓는다

 

이렇게 이렇게

함께.

 

여름 숲에 들다 / 주로진

 

숲속에 드니 파랗게 물이 든다

 

장마는 그쳤다

긴 장마 끝 햇살 눈부신 날

골짜기 그늘 이끼 푸르고

개울은 철철 몸이 불었다

울창한 계곡 나뭇가지끝

날개옷 한 벌 대롱대롱 걸려있다

비 그친 숲 요란한 매미 울음

어디선가 씨 여무는 소리

귓불을 간질이던 바람

출렁출렁 다래넝쿨 타고 있다

 

왁자한 개울에 매미 울음 떠내려간다

 

/ 임보

 

숲을 보았는가?

천년의 원시림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그 웅장한 거목들의 몸짓을 보았는가?

그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면

서울 근교 광릉의 아름드리 잣나무밭쯤에

가 보아도 좋네.

 

그 나무들 곁에 가 고개를 들면

우리가 시정에서 서로 키를 겨루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노릇인가를 보게 되지.

 

그 나무들 곁에 가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주고받는 일상의 말들이

얼마나 시끄럽고 쓸모없는 소리인가를 듣게 되지.

 

아니, 그 나무들 곁에 가 서게 되면

우리가 그 동안 걸었던 먼 길이

얼마나 고달프고 덧없는 짓이었던가를 알게 되지.

 

저 건장한 어깨와 어깨들을 서로 나란히 엮어

자라는 저 순금의 단란

그들이 지닌 유일한 언어……

저 긍정의 푸른 모음들

그리고 그들의 싹을 틔운 어머니 대지를

한 치도 배반하지 않는

저 충직과 인내.

 

숲을 보았는가?

몇 백 년 묵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서 있는

그런 숲에 가 보게

그 숲에 가서 한 둬 시간 머물다 보면

우리는 한 십년쯤 더 자라서

빈 가슴으로 돌아오게 되지.

 

나무처럼 살아요 / 조연환

 

평생을 다짐한 두 분이여!

나무처럼 살아요

 

한번 자리 잡으면 백년을 터 잡아 살 듯

한번 정한 뜻 백년을 간직하며 살아요

기름진 땅, 메마른 땅 가리지 말고

남의 자리 , 이웃나무 탐내지 말고

심겨진 자리 만족하며 나무처럼 살아요

 

사랑으로 하나 된 두 분이여!

숲처럼 살아요

 

참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져 숲을 이루듯

서로의 다름을 탓하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견주지 말고

서로 다른 나무가 모여 건강한 숲을 이루듯

그렇게 숲처럼 살아요

 

새 출발을 하는 두 분이여!

산처럼 살아 가세요

 

나무를 기르고 숲을 품어 주는 산

생명의 터전이 되는 어머니 같은 산

힘들 땐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산

두 분 산이 되어

서로 품어주고 살려 주며 기대가면서

그렇게 산처럼 살아 가세요

 

오늘 모습 이대로!!!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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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