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사람_20년 지방 공무원의 회한과 고백

그는 20년차에 들어선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기능직 8급이다. 아무개 시청에서 동사무소로 전보 - 공무원 사회에서는 본청과 외청을 오가는것 - 에 2년 간 주민 창구를 지키고 있다.

 "하루 온 종일 어깨가 쑤십니다. 앉아있다고 하지만 쉴 틈도 없이 밀려드는 민원을 감당하기가 만만치는 않죠."

적금을 부어 36평 아파트 하나를 마련했다. 융자를 끼면 앞으로 10년 동안을 빚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다. 상경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야말로 무일푼이었다.
 
그렇다고 공무원이란 직업이 남는 장사는 아니었다. 빠듯한 생활비를 나눠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보내고 나머지를 꼭꼭 모아 집 한채 건졌다.
 
20여년 전 공무원 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부모님도 형제도 친지도. 국가고시 아닌가. 사회 초년생인 그에게 일은 행복한 것이었고 보람이 넘쳤다.
 
얼마간 그랬다. 정도의 차이는 인정한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한계에 부딪히면서 좌절의 순간이 왔다. 여성이기 때문에 감당하는 건 그렇다 치자. 어느날 친하고 자상하기만 했던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그는 분노했다. 서류를 내팽기치고 소리질렀다. 그렇지만 말 할 수 없었다. 그냥 삭히는 것이 그땐 전부였다. 물론 20년 전 얘기다.
 
일이 재미없었다. 전부 그것 때문은 아니다. 잠시 헤프닝이었다고 치면 되니까라며 내까릴 순간도 없이 과중한 업무에 코피를 흘리기 일쑤였다.
 
연가도 내보았다. 1년에 22일의 연가가 주어지지만 과중한 업무량에 눈치보며 틈틈이 여행도 가보고 이른바 맘 딲는 이들이 간다는 수양원도 가봤다. 잠시 마음은 풀 수 있었지만 근원적인 문제는 미완이었다.
 
여성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것 중 하나인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이미 공무원 사회에 승진문제 특히 인사의 정체문제는 모든 공무원이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부분이다.
 
인사가 적체(積滯)가 되다보니 서로 다퉈 승진을 하려한다. 비리 아닌 비리가 없을 수 없다는게 그의 고백이다. 그 비리 또한 능력이 없으면 하지 못한다.
 
물론 이게 일반론일 수 없다고 그는 애써 말하지만 지방의 수많은 시(市)마다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중앙부처와 지방부처 공무원의 차이 아닌 차이를 강조한다.
 
"일단 지방 공무원으로 시작한 이상 중앙부처는 꿈이죠. 기자님이 질문하신 건 기대도 안합니다. 다만 지방 공무원으로서의 최소 품격을 지키고 살고 싶을 뿐이죠."
 
민원의 최일선에서 공무원 특히 여성은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한다. 민원인의 화(吙)와 원 (願)에 대해 성급히 표정을 보여선 안된다. 친절한 공무원이 그럴 수 없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민원 공무원 치유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현장 공무원이 받는 스트레스가 한계에 와 닿았다는 반증이다. 밖으로 공론화할 수 없어 내부적으로 삭히며 풀겠다는 미온적 대처다.
 
그는 말한다. 이른바 '철밥통'이라는 세간의 부러움 따위는 내게는 너무 먼 얘기라고. 일부 공무원이 그렇다치더라도 대부분의 공무원은 그 비아냥이 괴로운 수식어일 뿐이다.
 
그것은 두려움이요 내 업(業)의 짐이요 산적한 공무를 말 없이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사회적 사명에 대한 암묵적인 멍에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도 인간입니다. 모든 공무원이 한결같은 나라의 공복이랄지도 완벽한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친절한 공무원이 당위라고 한다면 민원인도 공무원을 기계적 공무로만 바라봐주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의 일이기에 상식적인 소통이 필요한 거죠."
 
20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때려칠 생각도 많이 했다. 솔직히 목구멍이 포도청이어서 한 일이다. 다른 일은 엄두가 안난다.
 
그는 거창한 의미는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러 직업군이 존재하듯 사회의 일원이고 공무원의 입장에선 생업의 현장이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 그는 그 일을 하고 있다.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더도 나라의 행정 조직의 최 일선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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