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23)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난 그대의 나무이고 싶습니다 / 김정한

 

,

그대를 위한

한 그루의 늘 푸른 나무이고 싶습니다

 

이 비 그치면

파아란 하늘 아래

아름답게 핀 무지개를 보며

그대 앞에 선

한 그루 푸른 나무이고 싶습니다

 

말은 못하지만

그대가 힘들고 아플 때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한 그루의 푸른 나무이고 싶습니다

 

그 어떤 비바람에도

모진 해풍에도 끄덕 않는

한 그루의 강인한 푸른 나무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오시면

어서 오세요

그늘에서 잠시 쉬다 가세요

말 대신,

푸르게 푸르게 흔들거리면서

쉼터를 주는 한 그루의 나무이고 싶습니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지면

그대의 아픈 사연, 기쁜 얘기도 들어주며

그대와 함께 일곱 색깔 무지개를 보며,

늘 푸르게 푸르게 살고 싶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그대와 함께하는,

그대를 지켜주는 늘 푸른 나무이고 싶습니다

 

5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에 대한 논란도 있고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와 학교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도 있지만 스승의 날이 제정된 유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누구나 가슴 속에 기리는 스승은 있다. 우리는 어떤 선생님을 기리고 그리워하는가? 사람마다 자기의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많이 기리는 선생님은 잘 가르쳐주고 잘 돌봐주신 선생님이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관심과 배려를 베풀어 주신 선생님, 낙심할 때 격려해 주시고 절망에 빠져 방황할 때 용기를 주신 선생님, 앞길에 대한 희망을 말씀해주신 선생님, 잘못한 일이 있을 때 부드럽게 또는 엄하게 타이르고 꾸짖어주신 선생님이다.

 

36년간 교직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제자들을 만났다. 이제 교단을 떠나서 돌아보면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좋은 일들과 함께 제자들에게 잘못하거나 소홀이 한 일들이 더 많이 떠올라 미안하고 아쉽고 후회스러운 마음이 많다.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금 더 살펴주었더라면 제자의 마음이, 제자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부족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이다.

 

내가 만난 제자들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공부를 잘 해서 국내외의 대학 교수나 훌륭한 연구자가 된 제자들도 있고 다른 여러 분야에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 제자들도 많지만, 내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제자들은 어려운 환경이나 좌절을 극복하고 어엿이 일어서서 슬기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힘들 때 함께 울며 마음을 달래던 제자들도 많이 생각난다. 모든 선생님들의 마음은 똑같을 것이라 믿는다.

 

선생님의 마음을 담은 시들,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와 함께 공부했던 제자들을 추억하게 하는 좋은 시들이 많다. 위에 소개한 김정한 님의 시는 꼭 스승의 마음을 노래한 것만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간직하고 있는 제자들에 대한 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 도종환 님의 <스승의 기도>와 이해인 님의 <어느 교사의 기도>를 읽으면서 못 다한 제자 사랑의 마음을 기도에 담아 본다. 해설이 따로 필요 없는 쉽고도 감동적인 시들이다.

 

이 땅의 모든 제자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슬기롭고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힘들더라도 기쁘게 가르치고 돌보면서 보람을 누리기를 함께 기원한다. 모든 학교가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행복한 배움터가 되기를 기원한다.

 

스승의 기도 / 도종환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 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갯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더더욱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교사의 기도 / 이해인

 

이름을 부르면 한 그루 나무로 걸어오고

사랑해 주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나의 친구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꿈을 꾸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힘든 일 있어도 내가 처음으로 교사의 자리에 섰을 때의

떨리는 두려움 설레는 첫 마음을 기억하며

겸손한 자세로 극복하게 해주십시오

 

섬기는 일은 더 성실한 배움의 시작임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하는 열정을 지니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내치지 않고 차별하지 않으며

포근히 감싸 안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항상 약한 이부터 먼저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싶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들의 필요를 민감히 파악하여

도움을 주는 현명한 교사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있어도

충동적인 언행으로 상처를 주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인내의 덕을 키우도록 도와주십시오

친구들의 잘못에 대하여 적절하게 충고할 줄 알되

더 많이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

지식과 지혜를 조화시켜

인품이 향기로운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기도하고 인내하는 사랑의 세월 속에 축복 받은 나의 노력이

날마다 새로운 꽃으로 피어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어느 날 그 꽃자리에

가장 눈부신 보람의 열매 하나

열리는 행복을 기다리며

오늘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교사가 되게 해주십시오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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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