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22)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5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을 꼽으라면 어머니를 제일 많이 꼽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살아가는 삶 속에는 사랑과 미움, 갈등과 분쟁, 경쟁과 협력 등 여러 가지 얽히고설키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머니와의 관계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의존의 관계이다. 어머니의 사람은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며 거룩함에 가깝다.

 

어버이날이 돌아왔다. 소외된 아버지를 배려하여 어버이날로 바뀌었지만 원래는 어머니날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도 작지 않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과 보살핌에 의존해 살아오던 자식들이 스스로 부모가 되고 삶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자식을 위해 모든 것 다 주고 늙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할 때이다.

 

어머니에 대한 자식들의 마음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한 존경과 감사와 찬양의 마음이 많을 것이고,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신 어머니께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미안함과 후회,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들도 많다.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가장 먼저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수 없는 애달픈 마음에 울기도 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함께 기뻐할 어머니가 안 계실 때에도 운다.

 

어머니에 대한 시가 아주 많다. 서두에 소개한 정채봉의 시 <어머니가 휴가를 나온다면>은 설명이 필요 없이 어머니를 여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머니 중에도 자신도 엄마가 된 딸이 그리는 친정엄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조정숙의 <친정>과 고혜정의 <친정 엄마>는 그런 특별한 의미를 잘 나타내는 시이다. 차옥혜의 <거울 속 어머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하고 추억한다. 손 세실리아의 <곰국 끓이던 날>은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르느라 진액이 다 빠진 암소의 뼈로 곰국을 끓이면서 자식을 위해 모든 것 다 바치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뛰어난 시이다.

 

친정 / 조정숙

 

나 가끔 친정으로 돌아가면

금세 엄마의 어린 딸이 되어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녹신녹신해져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한 일들

그만 까마득해지고

길을 가다 지나쳐 만난 사람처럼

남편 얼굴도 서먹서먹해져서

엄마 손에서 익은 물김치

호록호록 떠먹어가며 밤새도록

친구 같은 수다를 떨었네.

 

엄마도 참 고생이 많수

서로 마음을 만지작거리다가

,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 한 줄 아나

좀 더 살아봐라 내 맘 알끼다

엄마를 관통한 바람이

목적도 없으면서

천천히 나에게 불어오는

내 속엔 작은 엄마가 있어서

가는 허리가 자꾸 휘청거린다.

 

친정엄마 / 고혜정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더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 자주 못 보여줘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엄마의 허리 디스크를 보고만 있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퍼센트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거울 속 어머니 / 차옥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거울을 보면

어머니가 그 안에서 나를 보고 계신다

서글프신 듯, 기쁘신 듯

할 말이 있으신 듯

그러나 끝내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보신다

그러나 나는 벌써

어머니 마음, 아머니 말씀

번개보다 빠르게 다 알아채고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시며

마주 웃으신다

 

곰국 끓이던 날 / 손세실리아

 

노모의 칠순잔치 부조 고맙다며

후배가 사골 세트를 사왔다

도막난 뼈에서 기름 발라내고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

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

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

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

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보니

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

고기 값이 황소 절반밖에 안되고

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

 

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온 어머니

저렇듯 온전했던 한 생을

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거였구나

그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먹고 살았구나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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