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21)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5월을 드립니다 / 오광수

 

당신 가슴에 빨간 장미가 만발한 5월을 드립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생길 겁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느낌이 자꾸 듭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들이 많이 많이 생겨나서

예쁘고 고른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얼굴 가득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당신 모습을 자주 보고 싶습니다

5월엔 당신에게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좋은 기분이 자꾸 듭니다

당신 가슴에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5월을 가득 드립니다

 

화려한 꽃의 계절 4월이 봄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고 난 다음 계절의 여왕인 푸른 5월이 왔다. 아직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꽃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5월은 화려함보다 더 풍성한 신록의 계절이다. 연두색에서 연녹색으로 옷을 갈아입던 초목들은 이제 점점 더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다. 꽃 지고 난 자리에는 갓난아이 같은 작고 귀여운 열매들이 맺혀 무럭무럭 자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푸른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청소년의 달이다. 51일 근로자의 날로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5월에 들어 있다. 4월의 화려함 속에 숨어 있던 아픔과 슬픔을 이기고 이제 5월에는 또 다시 해로운 희망을 이야기한다. 생명을 신비로움을 느끼고 행복을 꿈꾼다.

어린 시절 산골마을 나의 고향에서의 5월은 모내기를 준비하는 계절이었다. 봄비를 가득 채운 다랑이 논에 거름을 내고 누런 소가 끄는 쟁기와 써레로 갈고 고른 다음 모내기를 한다. 녹음방초가 우거진 산골짝에서는 뻐꾸기와 꾀꼬리가 짝을 찾아 노래한다. 산과 들에는 가난한 산골 사람들에게 귀한 먹잇감이 되는 온갖 나물들도 풍성하다. 밭에는 보리가 익어가는 향기가 그윽하고 잠에서 깨어나 뽕잎을 갉아 먹는 누에들의 사각거리는 입놀림이 예쁘다.

5월을 노래하는 시들은 계절에 알맞게 싱싱하고 희망적이다. 이해인 님의 <5월의 시>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을 노래하고 있다. 복효근 님은 <5월의 느티나무>에서 연초록 입술들은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이오덕 님은 경상북도 농촌 지역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평생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며 살리는 일에 헌신한 분이다. 이오덕 님의 <감나무 있는 동네>를 읽으면 감꽃을 따먹기도 하고 풀에 꿰어 목에 걸기도 하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 5월의 추억이 그리움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5월의 시 / 이해인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 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

호수에 잠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 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 내는 5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5월의 느티나무 / 복효근

 

어느 비밀한 세상의 소식을 누설하는 중인가

더듬더듬 이 세상 첫 소감을 발음하는

연초록 저 연초록 입술들

아마도 지상의 빛깔은 아니어서

저 빛깔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초록의 그늘 아래

그 빛깔에 취해선 순한 짐승처럼 설레는 것을

어떻게 다 설명한다냐

바람은 살랑 일어서

햇살에 부신 푸른 발음기호들을

그리움으로 읽지 않는다면

내 아득히 스물로 돌아가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은근히 쥐어보고 싶은

이 푸르른 두근거림을 무엇이라고 한다냐

정녕 이승의 빛깔은 아니게 피어나는

5월의 느티나무 초록에 젖어

어느 먼 시절의 가갸거겨를 다시 배우느니

어느새

중년의 아내도 새로 새로워져서

오늘은 첫날이겠네 첫날밤이겠네.

 

감나무 있는 동네 / 이오덕

 

어머니,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연둣빛 잎사귀

눈부신 뜰마다

햇빛이 샘물처럼

고여 넘치면

 

철쭉꽃 지는 언덕

진종일 뻐꾸기 소리

들려오고

 

마을 한쪽 조그만 초가

먼 하늘 바라뵈는 우리 집

뜰에 앉아

 

어디서 풍겨 오는

찔레꽃 향기 마시며

어머니는 나물을 다듬고

나는 앞밭에서 김을 매다가

돌아와 흰 염소의 젖을

짜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짙푸른 그늘에서 땀을 닦고

싱싱한 열매를 쳐다보며 살아갈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가지마다 주홍빛으로 물든 감들이

들려줄 먼 날의 이야기와

단풍 든 잎을 주우며, 그 아름다운 잎을 주우며

불러야 할 노래가 저 푸른 하늘에

남아 있을 것을

어머니, 아직은 잊어버려도 즐겁습니다

 

오월이 왔어요

집마다 감나무 서 있는

고향 같은 동네에서

살아갑시다, 어머니!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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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