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19)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안도현의 <사랑>이라는 시에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은 뜨거운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을 패러디한다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오는 것이다.’

일찍이 김소월이 <산유화>라는 시에서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라고 노래했듯이 봄부터 시작해서 가을까지 각양각색의 꽃들이 계속 핀다. 요즈음은 겨울에도 온실에서 꽃이 피어 사계절 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피는 계절을 떠올리면 봄이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그래서 봄에 관한 시에는 꽃이 많이 들어 있다.

꽃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꽃의 모양과 색깔과 향기도 매우 다채롭고, 꽃이 피고 지는 시기도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이 조화(造花)를 만들기도 하고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꽃은 어떤 과학기술로도 만들 수 없고, 어떤 예술로도 온전히 그려낼 수 없는 신의 창조물이다. 누구나 꽃 앞에 서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고, 정결해지고, 밝아지고, 맑아진다. 경건해지고 거룩해진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살아간다. 그림으로, 사진으로, 꽃꽂이로, 노래로, 시로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감상한다. 꽃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꽃이 피어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산과 들로 꽃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부분의 꽃들은 오래 가지 못한다. 어쩌면 꽃이 쉽게 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더 그리워할 것이다.

오래 가지 못하는 꽃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꽃의 의미, 꽃 속에서 읽는 삶의 의미를 기리기 위해 시인들은 꽃을 시로 그려내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삶을 노래한다. 시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꽃들을 시로 쓰고 싶어 한다. 시를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저 유명한 김춘수의 <>에서부터 안개꽃이나 풀꽃들을 노래하는 시까지 꽃에 관한 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꽃이 피는 것은 한 하늘이 열리는 것이라고 한 이호우의 <개화>는 꽃 피는 모습을 아주 잘 그려낸 시이다. 신달자의 <개나리꽃 핀다>는 꽃을 세상을 순화시키려고 하늘의 선물로 내린 빛의 아기들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강은교의 <그 꽃의 기도>는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꿈을 안고 피어나 고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갈구하는 마음을 담았다. 정연복은 <꽃 앞에 서면>에서 꽃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잘 그리고 있다.

 

개화 / 이호우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개나리꽃 핀다 / 신달자

 

바람 부는 3

진회색 개나리 가지들 속에서

노오란 머리 비집고 나오는

신생아들

순금의 애기부처들이

지난해 못다 준 말씀들

세상에 와르르 쏟아내고 계시다

온 몸으로 순금의 등을 켜고

거리에 순금의 자비를 내리신다

화가 잔뜩 난 사람들 여기를 봐라

하늘의 선물로 내린 빛의 아기들

세상을 순화 시키려고

거리마다 신생아실을 짓는다

절하라

거기가 어디든 모두 법당 안이다

아기부처들을 태운 황금마차가

세상의 거리를 달려간다

3월 설법으로

개나리꽃 핀다

 

그 꽃의 기도 / 강은교

 

오늘 아침 나는 피어났어요.

내가 일어선 땅은 아주 조그만 땅

당신이 버리시고 버리신 땅

 

나에게 이슬을 주세요.

나에게 미풍을 주세요.

나에게 눈 감은 별을 주세요.

 

그믐 속 같은 이슬을

그믐 속 같은 바람을

그믐 속 같은 별을

 

내가 피어 있을 만큼만

내가 일어서 향기로울 만큼만

내가 문 열어 눈부실 만큼만

 

내가 꿈꿀 만큼만

 

꽃 앞에 서면 / 정연복

 

작은 풀꽃 하나

눈에 쏙 들어왔습니다

순간, 세상이 밝아 보이고

마음이 환해집니다.

 

야트막한 채송화를 보려고

몸을 바싹 낮추었습니다

세상 욕심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꽃 앞에 서면

작고 낮은 꽃 앞에 서면

문득 나도

한 송이 꽃이 됩니다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36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을 역임하고 대전관저고등학교에서 퇴임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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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