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영 박사의 생명나눔 이야기(3)

강치영
강치영

[광교신문 칼럼=강치영]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이웃 돕기, 결식아동및 독거노인 돕기등 우리사회 곳곳에서 나눔의 행사들이 펼쳐진다.

생명나눔인 장기기증 운동이 시작되던 90년대 초, 정부의 복지 정책이 선진국 수준까지 이르지 못하다 보니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했다.

그나마 혜택을 받는 분들도 최저 생계를 유지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민간 단체나 자원 봉사자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다.

그당시, 기업이나 공익의 목적으로 몇 억씩 기부하는 것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감당해야할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가슴에, 따뜻하게 전해 오는 것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우리 이웃들이다.

비록 많은 금액이나 거창한 사회 사업이 아니라도 자신의 일부를 남에게 베푸는 데 주저하지 않는 우리 이웃의 모습에서 우리는 더 큰 감동과 사랑을 느낀다.

필자는 지금까지 생명나눔의 장기기증 사업을 해 오면서 수, 많은 장기 기증자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장기 기증을 희망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그들중 많은 분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분 들이 아니었다.

"장기 기증, 하고, 사는 형편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반문 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물론, 장기기증 하고, 그 사는 형편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장기 기증의 이면에는 항상 장기 매매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고, 특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격는 사람들 중에는 장기 매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수있고 필자에게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 오기도 하였다

참고로 당시90년도 초창기 부산일보에서 장기 밀매 조직에 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 하였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장을 사고 파는 반 인륜적 행위가 밀매 조직에 의해 부산에서 수년째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

이들은 신장 제공자를 연결해주고 알선비 명목으로 2,3백만원을 받고있어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 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들은 [신장이식협회] 라는 그럴듯한 사무실을 차려놓고 신장 이식 수술을 요하는 환자들의 명단을 확보한 뒤 장기 밀매 행위를 하고있다.

고신의료원의 경우 84년부터 91년 말까지 신장 이식 수술자 269명 중 62명이 타인이 제공한 신장으로 수술했다고 병원측이 밝혔다.

병원의 한 관게자는 "타인이 제공한 신장은 거의 매매에 의한 것이 확실하다", 말했다.(중략)

이렇게 장기밀매까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자신들 스스로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면서도 남을 위해 자신이나 자기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결단이고, 인간이 할수있는 가장 고귀한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판" 에 다른 사람에게 나와 내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마음을 먹고 그렇게 실행에 옮긴 우리 이웃들의, 따뜻한, 그러나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1993년 4월30일에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있는 영광재활원의 박현기 원장으로 부터 새벽에 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그 날 새벽 3시 경 재활원에서 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던 염점득(29세. 해운대구 반여동) 씨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숨진 염씨의 생전 유지에 따라 각막을 기증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 해온것이다.

"내가 비록 배운것과 가진것이 없어 남에게 베풀지 못하고 살지만, 만일 죽어서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누어 주고 가고 싶습니다."

평소 점득씨는 원장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급히 각막을 필요로 하는 병원을 수소문 하였고, 고신대학교 의료원 안과 교실에서 각막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신대에서 각막 이식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수술은 고신대 안과 한영호 교수가 집도하기로 하였는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경찰측에서 검사의 지휘없이는 사체에 손을 델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담당 형사에게 장기기증과 각막 기증및 적출 시간은 최대 6시간 이내에 해야한다고 설득 하였으나 불가하다고 하였고, 부산지검 윤종남 형사부장 에게 연결하여 바로 각막을 적출 할수가 있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지체 하였더라면 아마 염점득씨의 유지를 받들지 못한채 각막은 사용 해 보지도 못하고 페기 되었을 것이다.

다음날 오전 8시경 기증자 염씨로 부터 적출된 각막 2개는 옥모(여 20세.부산남구 우암동) 씨와 김모(여.47세 부산동구) 씨에게 이식하여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쳣다.

기증된 각막으로 평생 빛을 보지도 못할 뻔하며 실명 위기에 처 한 두사람이 광명을 찾은것이다.

그때까지 국내에서, 각막 이식 수술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2명이 동시에 이식을 받아 성공한 사례는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숨진 염씨는 고아 출신의 장애를 가지고 영광 재활원에서 원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장갑짜기 기술을 가르치며 생활해 왔던것. 신체적 불편함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절망 스러워 했을 법한데도, 그는 항상 밝고 즐거운 표정으로 오히려 밑에 동생들을 다독이며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박원장님은 점득씨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 하며, "우리 점득이는 63명의 원생들 모두에게 다정한 형님 오빠의 역활을 해왔습니다. 자신에게 장애가 있고 고아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제대로 된 사회생할을 못했지만 그렇게 착할수가 없어요. 지금은 내가 아무것도 해줄수가 있는것이 없지만, 무엇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남 을 돕고 싶다고 입버릇 처럼 말해 왔습니다." 라고 생전의 삶을 전해주었다.

박현기 원장님과 헤어진후, 비록 생전에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염전득씨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세상에 선한 것만 생각하다 떠나 간 그의 맑은 눈빛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점득씨에게 각막을 이식받고 새롭게 빛을 보신 두분은 아마도 세상의 밝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살고 계실것이다.

서른도 채 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며 각막을 기증하고 떠난 염점득 씨의 아름다운 마음이 그눈안에 그대로 녹아내려 세상의 밝은 것만 보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 강치영 행정학 박사, 사단법인 한국장기기증 협회장

강치영은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행정학을 배웠다. 지금까지 339명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렸고,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 103구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 국민 서로간의 화합 및 국민건강 증진, 화상환자를 위한 조직기증과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골수기증, 및 장기기증을 통한 생명나눔의 외길을 걷고있어며, 저서로 *다시사는 세상,함께 나누는 생명*  장기기증과 거버넌스등 과 장기기증의 활성하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저작권자 © 광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