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16)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2월을 맞아 입춘과 설을 보냈다. 이제 비가 내리고 얼음이 풀린다는 우수 절기가 다가온다. 아직 찬 바람이 남아 있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도 있겠지만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이 있고, 제주도의 유채꽃, 남부지방의 동백꽃과 홍매화가 화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머지않아 온갖 기화요초가 피어날 것이다.

바야흐로 봄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계절이다. 봄이 오면 얼었던 대지가 풀리고 온갖 식물들이 겨우내 잠자던 뿌리와 줄기를 움직여 새싹을 틔운다. 약동의 계절이다. 새로움의 계절이다.

봄은 오래 기다려 맞이하지만 쉽게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봄을 기다릴 때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다. 봄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묵은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기도 하고 마음의 묵은 찌끼를 걷어내고 새 꿈, 새 희망으로 채워나간다. 우리의 삶도 약동하여 새로운 꽃을 피우기를 기대하고 노력하는 것이 봄이다.

어느 계절이나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노래하는 시들을 많이 짓지만 특별히 봄을 노래하는 시도 많고 노래도 많다. 그만큼 봄에 대한 기대가 크고 봄에 이루고 싶은 꿈이 많기 때문이리라. 우리 모두 봄노래를 부르고 봄을 노래하는 시를 읽으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 꿈을 키워가고 새 힘을 얻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봄의 시는 봄의 신비한 아름다움, 봄에 기대어 바라는 사람들의 기원 봄과 같이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은 다짐을 담고 있다. 권대웅의 <햇살이 말을 걸다>는 아주 먼 곳에서 달려와 봄을 만들어내는 햇빛의 감비를 매우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이기철의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는 창문을 열고 봄기운을 맛보듯이 우리의 마음도 활짝 열고 새 희망, 새 기쁨을 가질 것을 노래한다. 양현근의 <봄의 기도>는 새 봄을 맞이하여 가난하고 외롭고 슬프고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따뜻한 희망이 샘솟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해인의 <봄과 같은 사람>은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마음으로 새 꿈을 가지고 새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는 좋은 시이다.

 

햇살이 말을 걸다 / 권대웅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 이기철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그러면 풀들의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발이 간지러운 풀들이 반짝반짝

발바닥 들어 올리는 소리도 들릴 거예요

 

봄 아침엔 창문을 여세요

아픔처럼 꽃나무들 봉지 틔우는 소리 들릴 것입니다

햇살이 금가루로 쏟아질 때

열 마지기 논들에 흙이 물 빠는 소리도 들릴 거에요

어디선가 또옥똑 물방울 듣는 소리

새들이 언 부리 나뭇가지에 비비는 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사는 게 무어냐고 묻는 사람 있거든

슬픔과 기쁨으로 하루를 짜는 일이라고

그러나 오지 않는 내일을 위해

지레 슬퍼하지 말라고

산들이 저고리 동정 같은 꽃문 열 듯

동그란 웃음 하늘에 띄우며

봄 아침엔 화알짝 창문을 여세요

 

봄의 기도 / 양현근

 

이 봄에는

가난한 이들의 골목골목마다

따뜻한 소식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빈 둥지마다 맑은 심지 돋우며

별들이 실하게 차오르고

외롭고 힘든 일들로 밤이면 밤마다

가슴에 비질하는 이들에게

푸른 새벽이 부리나케 달려갔으면 좋겠습니다

 

벌판을 지나온 그림자들이

아직은 추운 하늘에서 비척일 때

또박또박 눌러쓴 편지들이

따뜻한 날들의 희망을 들먹거리고

추신을 덧붙인 사연들이

서로의 젖은 어깨에 당도해서

고운 노래가 되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봄에는

젖은 발자국과도 운명처럼 어울려

꽃처럼 한 세상 터져 우는

그런 사랑

그런 손해 보는 사랑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하루 종일 그리움만 돋아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풍경이 한 자나 더 깊어진 듯 싶습니다

 

봄과 같은 사람 이해인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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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