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13)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보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

봄이 온다네 봄이 와요

얼음장 밑으로 봄이 와요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이다. 시인이며 아동문학가인 윤석중 선생이 지은 노랫말로 알려지고 있다. 이 노래는 겉으로는 봄을 기다리는 노래이지만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되찾을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우리의 삶은 늘 평온하지만은 않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고 슬픔과 아픔과 절망과 고통이 늘 따르는 것이 삶의 현실이다. 일제 강점기나 독재정권 하에서 겪었던 국가적, 사회적 고통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고 경제가 발전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도 현실 속에서 개인적으로 겪는 삶의 문제들은 끊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하면서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간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고, 슬픔과 아픔이 클수록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소망은 더욱 간절하다.

시인은 누구나 겪고 있는 절망과 아픔을 좀 더 절실하게 느끼면서,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 다짐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를 쓴다.

홍수희의 <겨울 숲을 아시나요>와 문병란의 <희망가>는 겨울에도 봄을 기다리며 자라는 꽃씨와 새순을 빗대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것을 노래하고 있다. 정호승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희망과 꿈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고, 김정한의 <나에게 힘을 주소서>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절망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간절한 기도의 시로 모든 사람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겨울 숲을 아시나요 / 홍수희

 

잎 지고

새 떠나간 겨울 숲에는

외로움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남아 윙윙 부는

바람만 사는 것이 아니에요

인기척에 놀라 툭,

소리도 없이 떨어지는

삭정이만 사는 것도 아니지요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어 꽃씨가 산답니다

파릇파릇 새순이 산답니다

부끄럽게 웃고 있는

꽃무리도 숨어 살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도 숨어살지요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지는 말아요

희망한다는 것은

어둠 속에 감추어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니까요

겨울 숲에는 두근두근

설레는 봄날이 숨어 살아요

 

희망가 /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밤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나에게 힘을 주소서 / 김정한

 

나에게 힘을 주소서.

지치고 힘든 일에 부딪칠 때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힘을 주소서.

남 탓으로 세상 탓으로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오로지 나의 실수로 인정하게 하소서.

전신이 삶의 상처로 피고름이 흘러내려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지나친 집착과 헛된 욕망에 빠져

남의 삶을 살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힘을 주소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나를 신뢰하는 믿음의 기도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소서.

사랑으로 믿음으로 끌어안을 수 있게

강한 자신감을 주소서.

가치 없는 걱정을 물리칠 수 있는

현명함을 주소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나를 더 신뢰하고 나를 더 사랑하여

나날이 만족해하는 내가 되게 하소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는

어리석은 내가 아니라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지혜로운 내가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단단한 삶을 살아가게

나에게 강한 힘을 주소서.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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