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12)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겨울 맛 / 강세화

 

겨울에는 더러

하늘이 흐리기도 해야 맛이다.

 

아주 흐려질 때까지

눈 아프게 보고 있다가

설레설레 눈 내리는 모양을 보아야 맛이다.

 

눈이 내리면

그냥 보기는 심심하고

뽀독뽀독 발자국을 만들어야 맛이다.

 

눈이 쌓이면

온돌방에 돌아와

콩비지 찌개를 훌훌 떠먹어야 맛이다.

 

찌개가 끓으면

덩달아 웅성대면서

마음에도 김이 자욱히 서려야 맛이다.

 

강세화 시인의 겨울맛이라는 시이다. 올 겨울에는 겨울다운 흰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고 극심한 미세먼지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삼한사미라는 아름답지 않은 말까지 생겨났다. 생활에 불편은 따르지만 겨울에는 흰 눈이 내려 쌓이고 강물도 얼어붙어 썰매를 탈 수 있어야 겨울맛이 제대로 난다. 칠갑산 자락 산골마을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의 겨울 풍경이 눈에 선하다.

겨울은 침잠의 계절이다. 무성하게 자라 꽃 피우고 열매 맺던 한해살이 식물들은 겸손하게 생을 마무리하고 새 봄에 태어날 후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계절의 정지신호를 만난 나무들도 한 해의 삶을 갈무리하며 생장을 멈춘 듯이 서 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은 굴에 들어앉아 길고 긴 명상에 빠져 있고, 겨울 들판은 원시의 정적에 잠겨 있다.

겨울은 우리도 왕성한 활동보다는 조용한 숨고르기의 시간을 갖는 계절이다. 묵은 때를 닦아 내고 해어진 옷을 꿰매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계절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계절이다. 험한 세상 살아오느라 지친 영혼을 잠시 내려놓고 쉼을 얻는 계절이다.

겨울은 그러나 정중동의 계절이다. 꿈의 계절, 희망의 계절이다. 이 겨울에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고 새 봄을 기다리며 새로운 꿈을 꾼다. 새로운 삶을 설계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새 희망으로 무장하는 계절이 겨울이다.

지금 우리는 겨울 한복판에 서 있다. 아직은 남아 있는 추위가 오락가락할 것이고 폭설이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며칠 후 대한도 지나면 입춘이 다가오고 우수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남쪽 끝 반환점을 돌아온 태양은 조금씩 조금씩 빛과 열을 더하면서 잠자는 봄을 일깨울 것이다.

겨울이 깊어 가면 봄이 멀지 않다. 우리도 점점 길어지는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새 봄을 맞을 준비를 할 때이다. 세상은 언제나 소란하고 삶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으나 꿈이 있는 한, 소망이 있는 한, 기쁨이 있는 한, 밝은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 남은 겨울을 맘껏 누리면서 겨울이 낳을 옥동자 같은 새 봄을 기쁨으로 맞이할 채비를 할 일이다. 우리 모두 지난날의 신산했던 삶의 잔재를 털어버리고 새 날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릴 때이다. 아직은 멀지만 우리를 향해 쉼 없이 다가오는 따사로운 봄기운, 밝은 봄볕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겨울맛을 느낄 수 있는 시 2편을 더 소개한다.

 

겨울 숲 / 복효근

 

새들도 떠나고

그대가 한 그루

헐벗은 나무로 흔들리고 있을 때

나도 헐벗은 한 그루 나무로 그대 곁에 서겠다

아무도 이 눈보라 멈출 수 없고

나 또한 그대가 될 수 없어

대신 앓아줄 수 없는 지금

어쩌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눈보라를 그대와 나누어 맞는 일뿐

그러나 그것마저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보라 그대로 하여

그대 쪽에서 불어오는 눈보라를 내가 견딘다

그리하여 언 땅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뿌리를 얽어쥐고 체온은 나누며

끝끝내 하늘을 우러러

새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보라 어느샌가

수많은 그대와 또 수많은 나를

사람들은 숲이라 부른다

 

 

겨울 / 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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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