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희의 다이알로그

최순희
최순희

[광교신문 칼럼=최순희] 지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갈등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 만의 안경을 쓰고 글 안에 담긴 의미를 읽어낸다.

원시는 멀리보면 되고, 근시는 가까이 보면 된다. 난시가 문제다. 난시는 수시로 눈을 깜박여야 또렷한 글자 상을 읽어낼 수 있다. 읽을 만한 내용, 즉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런 수고를 하고도 계속 읽어 가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바로 눈을 감거나 클릭의 방향을 바꾼다.

의미도 사라진다. 그러니 근시나 원시 정도의 시력을 가진 이들과 적어도 글의 의미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글을 쓰는 의미’가 될 터이니 갈등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의미를 나누기 위한 것’이다. 의미를 나누고 글로써 소통하고자 할 때 그 첫 단계에서 사용하는 것이 경험이다.

글은 글을 쓰는 이의 삶이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는 것이다. 경험이 다르니 다양한 글이 나온다. 그래서 글은 나에게나 다른 이들에게 끝없이 읽고도 또 끝없이 읽을 거리를 만들어 낸다. 자 그럼 이쯤에서 왜 나는 글을 써서 독자와 만나야 하는가를 따져야 한다.

첫째, 내 경험이 다른 이들과 나눌 만한 것인가, 하는 판단이 있어야 한다. 둘째, 적어도 눈조리개로 거리를 조정하는 정도의 근시 혹은 원시의 독자들이 큰 수고 없이도 읽을 만한 것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글로써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은 아주 적은 이들과 나누는 말, 대화이다. 게다가 동영상이 정보매체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고 있다.

엄밀하기 말하면 유튜브가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붙들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라 한다. 눈의 자극이 심하고 귀까지 동원하여 계산된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이 동영상이다.

동영상 콘텐츠로 사람들의 눈과 귀가 넘어가는 시대에 글을 쓰고 글을 읽는 자들의 행위는 무엇인가, 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기로 한다. 일단 써 보는 거다. 그리고 또 일단 읽어주시기를 부탁한다. 대화를 뜻하는 Dialogue 라는 단어의 그리스 어원이 무엇을 통하여 logos 즉, ‘이야기를 나눈다’ 는 말이라 한다. 광교신문에서 대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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