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8)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시는 삶이다. 삶이 곧 시이다. 삶 속에서 우리가 겪고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들이 시에 담긴다. 시는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정선된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들의 뜻을 명료하게 하며, 그 모든 것들을 겪는 사람들을 기리고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삶을 살찌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60분씩 한 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하루하루가 쌓여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된다. 1365일을 제1일부터 제365일까지 한 줄로 세운다면 어떨까? 마치 수백 개의 계단을 딛고 산에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지루할 것이다.

우리는 힘들고 지루한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하루의 시간도 새벽, 아침, , 저녁, 밤 등으로 나누고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1년을 열 두 달로 나누고 4계절로 나누어 때마다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간다. 네 개의 계절은 다시 24절기로 나누기도 하고, 명절과 여러 가지 기념일을 정하여 삶을 다채롭게 한다.

시인은 삶의 모습들을 관찰하고 의미를 찾고 그것들을 글로 쓰는 사람이다.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절기에는 그래서 시가 풍성하다. 새해가 되면 새해를 맞는 시가 있고, 한 해를 보내는 즈음에는 송년의 시가 있으며, 매 달마다 그 달을 기리는 시가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는 계절을 노래하는 시가 있다. 또한 명절이나 기념일의 뜻을 새기는 시들도 많다.

성탄절을 노래하는 시들도 많다. 기독교신자이든 아니든 세계적인 명절이 된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날의 의미, 이날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 그가 하신 일, 그가 베푼 은혜와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그분 앞에서 자신의 삶, 세상의 모습을 돌아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탄식하고 뉘우치며, 다시 바른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성탄절에 읽는 많은 시들 중에 이해인 수녀 시인님의 시를 소개한다.

 

당신이 오신 날 우리는 / 이해인

 

당신이 어린이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어린이가 되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체면의 무게를 그대로 지닌 채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비록 당신을 모시기엔 부끄러운 가슴이오나

당신을 기꺼이 안아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당신을 안고

당신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고

겸손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해 주십시오

당신과 함께 따뜻하고 온유한

어린이의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빛으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살라 버리지 못한 죄의 어둠 그대로 지닌 채

당신께 왔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비록 허물투성이의 삶일지라도

당신의 빛을 따르면 길이 열리오니

오직 당신만을 따르겠습니다

빛을 가리는 욕심의 어둠

불신의 어둠을 몰아내고

당신의 빛 안에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사랑으로 오신 날 우리는

아직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오

너무 큰 사랑 앞에 드릴 말씀 없어지는

감사의 밤

늘 받기만 하고

당신께는 드릴 것이 부족한

우리의 가난함을 용서하십시오

우리의 힘만으로는 헤어날 수 없는

이기심과 무관심의 깊은 수렁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보다 자유로운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 어린이로 오신 하느님의 탄생

이 세상에 빛과 사랑으로 오신 하느님의 탄생

우리가 보고 들은 이 놀라운 일을

다시 믿게 하여 주십시오

믿을수록 놀라운 이 일을

가장 기쁜 소식으로 다시 말하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세상 모든 이가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십시오

 

불의와 증오와 폭력을 녹이는

당신의 정의, 당신의 용서, 당신의 평화가

세상 곳곳에 스며드는 물이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 당신이 오신 날 우리는 비로소

처음으로 타오르는 축제의 촛불입니다

처음으로 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은혜로 장식된

한 그루의 아름다운 성탄 나무입니다

색종이를 오려서

우리집 유리창에 별을 달듯이

오늘은 우리 마음의 창마다

당신의 이름을 별처럼 걸어 놓고

당신이 오신 기쁨을 노래합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은방울 쩔렁이며 노래합니다

사랑의 화음에 맞추어 당신을 찬미하며

우리 모두 하나가 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세계에서

모든 이가 사랑이신 당신 안에

당신을 부르며 하나로 태어납니다

 

어서 오십시오 예수님

우리의 별이 되신 예수님

 

■ 프로필 

- 1979 공주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 1983년부터 고등학교 영어교사, 장학사,  교감을 역임하고 현재 대전관저고등학교 교장
- 시 읽기, 시 낭송, 시 상담에 큰 관심을 갖고, SNS를 통한 시 나눔에 힘쓰고 있는 등단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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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