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의 시와 삶 (7)

최상현
최상현

[광교신문 칼럼=최상현] 시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맘먹고 신춘문예 당선 시나 유명 잡지사에서 발행하는 올해의 좋은 시에 실린 시를 찾아 읽는 사람들 중에 시가 너무 무겁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시에 대한 관심을 접고 시 읽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차원 높은 시도 있고, 어려운 시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쉽게 읽고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시들도 얼마든지 있다.

음악을 예를 들어 보자. 어릴 적에 동요나 교과서에 없는 속요를 부르면서 자랐다.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음악을 배웠다. 아름다운 가곡을 배우고 클래식 음악도 접하고 합창도 해보고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고전음악에서부터 대중가요까지, 소나타에서 교향곡까지 음악의 장르는 매우 다양하다. 보통사람들(?)은 그 중 극히 일부의 음악을 즐기면서 산다. 어떤 사람은 클래식 음악을 고집하여 즐겨 듣고 어떤 사람은 클래식 음악과는 담을 쌓고 산다. 노래방에 가면 남녀노소 누구나 노래를 즐겨 부른다.

시도 마찬가지다. 클래식 음악에 비할 만한 차원 높은 시는 그것대로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되, 대중음악처럼 보통사람들이 즐겨 읽는 시들을 하찮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런 시들은 오히려 시 독자층을 넓히고 누구든지 쉬운 모국어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공원이나 지하철역에서 만날 수 있는 시들도 얼마든지 독자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시인들은 누구나 좋은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메시지(의미, 내용)도 있고, 재미(읽는 즐거움)도 있으면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좋은 시들을 독자에게 선물하는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게 꼭 어려운 시일 필요는 없다. 쉽고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 작지만 큰 감동을 주는 시들을 쓰는 시인들이 얼마든지 있고, 누구든지 그런 시를 쓸 수 있다. 나는 그런 시들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하고 싶고, 그런 시들을 많이 쓰고 싶다. 그것이 이 칼럼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다.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 3편을 소개한다.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아내의 남자 / 이석현

 

연애시절 아내의 지갑을

몰래 훔쳐보았을 땐

은발의 리처드 기어가 있었고

 

결혼 전후 용모 단정했던

내 모습이 한참을

자리하나 싶었는데

이내 아들 돌 사진으로 바뀌었더군

 

허둥대며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한참을 잊고 살다 어쩌다 열어보니

군대 간 작은 아들이 빡빡머리

군기 바짝 든 모습이 자리했다가

 

얼마 전부터 파마머리 개구쟁이

외손주 녀석을 넣고 다니며

다이아반지 생긴 듯 아내는

은근슬쩍 여기저기 자랑하더군

 

몇 년 주기로 바뀌는

아내의 지갑 속 남자들

누굴까 그 다음은

 

종이컵 / 김미옥

 

그대 마른 입술 한번 적시고

끝나는 생이지만

미련 같은 건 키우지 않습니다

살가운 입맞춤의 순간이 곧 생의 절정

장식장 높이 앉아 지레 늙어가는

금박 무늬 잔도 부럽지 않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손 내밀 수 있는

친근함이 나의 매력

날로 늘어가는 사랑 어쩌지 못합니다

다만 짧지만 뜨거운 만남

따스하게 간직하고 갈 수 있도록

부디 뒷모습 추하지 않게 보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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