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영 박사의 생명나눔 이야기 (1)

강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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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신문 칼럼=강치영] 매년 12월 25일은 참으로 기쁜날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와 친구 간에 사랑을 전하는 성탄절은 그래서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 모두에게 1년 중에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997년 성탄절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생명나눔이라는 큰일로, 크리스마스 이브를 가족들과 보내지도 못하고 사무실과 자동차를 오가며 병원에서 보내며, 나에게는 가장 보람있는 성탄절이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가장 마음 아팠던 성탄절이기도 하였다. 악성 뇌종양으로 뇌사 판정을 받은 울산 명정 초등학교 5학년 정영주(12세)양이 25일 아침 8명의 말기 환자들에게 기증하고 어린 삶을 마감하였다. 산타클로스에게 예쁜 성탄 선물을 받아야 할 12세 소녀는 스스로 산타가 되어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새생명을 선물하고는 떠나갔다. 1997년 12월 25일 새벽 5시, 부산백병원 5층 중앙 수술실에서는 조광현 흉부외과장의 지휘하에 장기적출 수술이 진행되었다. 영주 양의 심장과 폐는 인천 길병원으로 옮겨져 심장병과 폐질환을 앓는 또래의 환자에게 이식되었고, 간은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선천성 담도폐쇠증으로 생명이 위독한 14개월의 아기에게 이식되었다. 또, 신장 2개는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3년째 투병중인 김모(16세) 군과 백병원의 주모씨(41)에게 각각 하나씩 이식되었다. 각막은 동아대병원 안과에서 30세 주부등 2명에게 이식되었고 연골은 고신대 정형외과 팀이 적출, 보관해서 다른 뼈골육종 환자에게 이식이 되었다. 이로써 영주양은 병으로 고통받던 수많은 환자와 그가족에게 새생명과 건강한 삶을 안겨주고 떠났다.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하였고, 기자들은 기사를 위해 영주양의 사진을 구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였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서 어쩔수없이 영주양의 어머니에게 사정이야기를 말씀드리고 내차를 타고 울산 집까지가서 사진을 가지고 부산 백병원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성탄절 새벽부터 시작된 장기적출과 이식수술은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심장과 폐는 인천 길병원 박국양 교수에 의해 생후 6개월째부터 선천성 복잡심기형 폐동맥 고혈압으로 12년간 사경을 헤매이던 손창현(13세) 군에게 이식, 수술도중 피가 모자라 인근 군부대와 교회 대학생의 긴급 헌혈을 받기도 하였다.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영주양의 콩팥을 이식받은 김형대군은 수술후 소변이 제대로 배설되는등 빠른 회복세를 보였고, 또다른 콩팥을 받은 주영환씨도 수술 경과가 매우 좋아졌다. 동아대 안과 노세현 교수팀의 집도로 영주양의 각막을 이식받은 이채순(30)씨와 길병원 이규훈 교수팀의 집도로 다른 한쪽 각막을 이식받은 남궁달씨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정상 시력을 찾았다.

수술 내내 아버지 정병호 씨는 딸의 장기 적출 수술을 지켜보며 눈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딸을 살리는 수술이 아니라, 딸의 몸으로 생면부지 타인을 살리는 수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것이다. 영주양의 장기 적출 수술이 끝난후에 영주양의 어머니는 나에게 영주의 하얀 속옷을 건내 주었다. 영주 어머니 이게 뭐지요? 하고 물었다. 영주 어머니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영주 춥지않게 마지막 가는데 입혀주세요. 수술이 끝나고 나면 어차피 화장이 될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딸이 잠시나마 춥지 않게 입히고 싶었기에. 두아이의 아버지인 나도 속옷을 건네받는 순간 너무나 마음이 아파 가슴이 저려왔다. 더욱이 12살 밖에 안된 딸을 이 엄동설한에 영영~ 먼저 떠나 보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함께 부둥켜 안고 울었다. 화장을 마치고 동아대 병원 윤진한 교수와 함께 부산 문화방송 TV 닥터에 출연하기 위해 시동을 켜고 라디오를 켜는데 마침, 이종환과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라는 프로가 시작하려는 참 이었다.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흐르고 진행자의 첫 멘트가 흘러 나왔다. 오늘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절 날 천사가 찾아 왔습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5학년 정영주 양입니다. 갑자기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조금전까지 일주일 동안을 영주양의 부모님과 함께 있었는데 갑자기 영주양의 이름이 라디오를 타고 흘러나오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생겨났다. 기쁘기도 하고 보람차기도 하지만, 영주양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였다 어쨌던 큰일을 치르는 데 내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장기기증은 생명 나눔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 하는것이다.

■ 강치영 행정학 박사, 사단법인 한국장기기증 협회장

강치영은 대학에서 사회복지와 행정학을 배웠다. 지금까지 339명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렸고, 국내 의학발전을 위해 103구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 국민 서로간의 화합 및 국민건강 증진, 화상환자를 위한 조직기증과 백혈병 어린이를 위한 골수기증, 및 장기기증을 통한 생명나눔의 외길을 걷고있어며, 저서로 *다시사는 세상,함께 나누는 생명*  장기기증과 거버넌스등 과 장기기증의 활성하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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