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양숙 여사 사칭한 전화 한 통에 돈 보내고 취업청탁도 들어줘
[오풍연 칼럼=광교신문]요 며칠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화제다. 좋지 않은 의미에서 그렇다. 정말 어리숙하게 사기를 당한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 모(49·여) 씨에게 거액을 사기당하고 자녀 채용 청탁까지 들어준 것.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더 기가 차다. 그런 사람이 시장을 지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속을 수 있었을까. 사기범 김씨도 혀를 찼다. 다른 사람들은 넘어가지 않았는데 유독 윤씨만 넘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사기 행각도 점점 대범해졌다. 윤씨가 자신을 의심하지 않으니 태연하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고 한다. 윤씨는 지금 네팔에서 의료 봉사 중이다.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윤씨는 "정말 어려운 말을 꺼낸다. 이제서야 알았는데 억장이 무너진다. 비서관한테도 말을 못 했다. ‘(사기범이)노 대통령이 순천 한 목사의 딸 사이에 남매를 두고 있다. 노무현 핏줄 아니냐. 거둬야 하지 않겠느냐. 이들을 좀 도와달라’고 말했다"면서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미디는 이렇게 시작된다. 윤씨는 지난해 12월 "권양숙입니다. 딸 사업문제로 5억원이 급히 필요하다"는 문자 메신지를 받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권 여사를 사칭한 전화 속의 김씨와 30여분 통화한 뒤 "전화 말미에 노무현 혼외자 말을 듣는 순간 소설처럼 내 머리에 뭔가가 꽂힌 것 같았다"면서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인간 노무현의 아픔을 안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내 이성이 마비됐다. 내가 바보가 됐다"고 털어놨다. 자신도 바보 노무현에 빗댔다.
김씨는 더욱 노골적으로 접근했다. "애를 보살폈던 양모(養母)가 연락을 줄 테니 받아보고 챙겨달라"며 윤씨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권 여사와 김씨 등 1인 2역을 한 사기꾼은 2∼3일 뒤 직접 시장실에 나타나 두 자녀의 취업 청탁을 했다. 김씨 아들은 김대중컨벤션센터 계약직으로, 딸은 모 사립중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다가 지난 10월과 지난 4일 각각 계약이 만료됐거나 자진 사직했다.
윤씨는 "사기꾼 김씨와 전화 통화는 3~4차례, 문자는 40여차례 오간 것 같다"면서 "내가 속지 않았다면 최근(10월)까지 문자를 주고 받았겠느냐"고 했다. 김씨에게 감쪽같이 속았다는 얘기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뭔가 바라고 돈을 보내고, 채용 부탁을 들어주었을 게 틀림 없다. 검찰이 선거법 위반을 의심하는 대목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무슨 끈이든지 잡으려다가 사기범에게 당한 듯하다.
윤씨는 의사 출신으로 시민운동을 해왔다. 그 덕에 광주시장도 했다. 평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사기범에게 농락당하고, 그동안 쌓아왔던 명성도 잃었다. 바보는 순수하다. 그러나 윤장현은 순수하지 않았다. 업보다.
- 오풍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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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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