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레의 개척자, 1984년부터 유니버설발레단 이끌어

[오풍연 칼럼=광교신문]나는 살면서 느낌과 인연을 중시한다. 특히 사람을 만날 때 그렇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의 초대를 받았다. 대한민국의 발레를 개척한 분이기도 하다. 나 역시 발레리나 하면 문 단장과 강수진 정도만 알고 있었다. 너무도 유명한 분이기에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문 단장도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문 단장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11일 새벽 운동을 마치고 5시쯤 들어왔는데 통계청장을 지낸 오종남 박사가 내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았다. 딱 한 줄. 굿모닝!. 나 역시 굿모닝으로 화답했다. 그랬더니 시간 되면 조선호텔 조찬 모임(오전 7시)에 오라고 했다. 오 박사가 주관하는 서울대 SPARC 과정 아침 세미나가 있던 그날이다. 마침 쉬는 날이라서 오케이를 한 뒤 참석했다.

거기서 처음 문 단장과 인사를 나눴다. 나는 새벽에 아침 식사를 하니까 커피만 한 잔 마셨다. 바로 옆자리에 문 단장이 앉았다. 그 모임에 처음이라서 한 분 한 분과 명함을 주고 받았다. 얼핏 문 단장께 말씀을 드렸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왔다고. 새벽 1시에 일어난다는 얘기도 한 것 같다. 내가 어제 초대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모임에 참석하든 인사를 나눈 분들께 안부를 전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의 평소 소통 방식이기도 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다섯 분께 똑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다시 연락이 오거나 만나리라곤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끌림이 있는 분들이 있다. 바로 문 단장이 그랬다.

“오늘 인사드렸던 오풍연입니다. 오종남 박사님의 초대로 귀중한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오 박사님과는 2000년 청와대서 처음 만났습니다. 저는 당시 서울신문 청와대 출입기자로 전체 기자단 대표를 했습니다. 박사님은 비서관으로 계셨구요. 그때부터 호형호제를 하며 지냅니다. 요즘도 종종 뵙는 사이구요. 드린 명함상 고문 이외에 오풍연 칼럼방 대표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유료 칼럼방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모습도 붙입니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했기에 이처럼 인사를 전하면서 동영상도 함께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문 단장에게서 9월 28일 메시지가 왔다. “오풍연 대표님~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보고타 콜롬비아에서 춘향 공연을 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추석을 맞이 했습니다! 보내주신 영상 너무나 잘 봤습니다! 저도 대표님처럼 새벽에 일어나고 싶은데 잠이 많아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대표님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오종남 박사님을 통해서 뵙게 되어 기쁩니다! 문훈숙 드림 ^^ ”

이렇게 인연이 되어 초대까지 받았다. 어제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가 살아온 얘기도 들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애국자다. 우리에게 발레는 여전히 불모지나 다름 없다. 그런 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으니까.

오풍연 칼럼니스트
오풍연 칼럼니스트
  • 1979년 대전고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1986년 KBS PD, 서울신문 기자 동시 합격
  • 1996년 서울신문 시경 캡
  • 1997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 2000 ~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간사)
  • 2006 ~ 2008년 서울신문 제작국장
  • 2009년 서울신문 법조大기자
  • 2009 ~ 2012년 법무부 정책위원
  • 2011 ~ 2012년 서울신문 문화홍보국장
  • 2012. 10 ~ 2016. 10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2012. 09 ~ 2017. 02 대경대 초빙교수
  • 2016. 10 ~ 2017. 09 휴넷 사회행복실 이사
  • 2017. 10 ~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 2018. 05 ~ 현재 오풍연 칼럼방 대표
  • 2021. 05 '윤석열의 운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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