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투병 끝에 오늘 숨져, "여보 사랑해"

[오풍연 칼럼=광교신문]박지원 의원 사모님의 부음을 접한다. 이선자 여사. 15일 세상을 떠나셨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나와, 아내와도 자주 만나던 사이다. 병원에 계실 때는 두 번 찾아 뵈었다. 세브란스에서 수술하신 뒤 한 번, 성애병원 한 번. 사람의 명이란 그렇다. 언젠가는 떠나신다. 오늘처럼.

작년에 문병갔을 때 나와 아내를 알아보셨다. 성애병원에 갔을 때는 주무시고 계셔서 얼굴만 뵙고 나왔었다. 기자 가운데는 내가 가장 많이 만났을 것으로 본다. 박 의원이 옥고를 치르실 때 사모님과 함께 면회를 가곤 했다. 정말 현모양처다. 사치도 모르신다.

처음 쓰러지실 때도 시내버스에서 내리다 그랬다. 누가 사모님이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겠는가. 원래 그런 분이다. 저녁 때 문상을 간다. 슬픈 날이다. 내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수십명이 내글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로 애도를 표시했다.

작년 이맘 때쯤이다. 오랜만에 박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으셨는데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제 아내 얼마 못 산대요”. 그로부터 딱 1년이다. 수술이 잘돼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가족들과 영영 이별했다.

사모님은 말씀도 없으셨다. 아내와 함께 부부동반해서 식사를 할 때도 거의 듣기만 하셨다. 박 의원은 워낙 유머도 많으신 분이라 식사 내내 대화를 주도했다. 박 의원의 부인 사랑은 유별나다. 그 바쁜 와중에도 부인과 걷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부인이 쓰러지시기 전의 일이다.

박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제 아내 이선자 미카엘라가 2018년 10월 15일 오후 1시 5분 하늘나라로 갔다”면서 “입원 308일, 고통 없이 평화롭게”라고 적었다. 그는 “큰딸이 오늘 오전 도착하고 둘째와 조카들 모두가 임종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내길 기도한다”고 했다.

이후 또 한 차례 글을 올렸다. “한 달 전부터 기력이 저하돼 부부만이 느끼는 감정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서 “지난 13일 병원에서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 (아내는) 이틀간 아무런 고통 없이 평화롭게 하늘로 갔다”고 전했다. 이어 “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박 의원을 2000년 가을 처음 만났다. 내가 청와대 출입기자로 가서다. 그런데 이런 소문도 났다. “박지원이 오풍연을 끌어왔다”고. 사실일 리 없다. 하지만 정말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다. 고인의 영면을, 박 의원께는 위로를 건넨다.

오풍연 칼럼니스트
오풍연 칼럼니스트
  • 1979년 대전고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1986년 KBS PD, 서울신문 기자 동시 합격
  • 1996년 서울신문 시경 캡
  • 1997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 2000 ~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간사)
  • 2006 ~ 2008년 서울신문 제작국장
  • 2009년 서울신문 법조大기자
  • 2009 ~ 2012년 법무부 정책위원
  • 2011 ~ 2012년 서울신문 문화홍보국장
  • 2012. 10 ~ 2016. 10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2012. 09 ~ 2017. 02 대경대 초빙교수
  • 2016. 10 ~ 2017. 09 휴넷 사회행복실 이사
  • 2017. 10 ~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 2018. 05 ~ 현재 오풍연 칼럼방 대표
  • 2021. 05 '윤석열의 운명' 저자
저작권자 © 광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위 칼럼은 신문사의 논지와 견해에 있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