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등반 도중 숨져, 영원한 산악인으로 남아

[오풍연 칼럼=광교신문]또 한 명의 산악 영웅을 잃었다. 김창호 대장이 히말라야에서 스러진 것.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대장은 히말라야산맥 구르자히말산을 등반하던 한국인 4명과 함께 숨졌다. 그토록 사랑하던 산에서 일생을 마쳤다. 전세계 산악인들이 그의 사망을 애도하고 있다. 그만큼 세계 산악사에 큰 획을 긋기도 했다.

김창호는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무산소로 최단기간에 완등한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이다. 그는 2007년 K2(8,611m) 무산소 등정을 비롯해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를 7년10개월6일만에 무산소로 등정해 세계 최단 기록을 세웠다. 또 2012년까지 8000m급 13개봉에 16회 올랐고, 바투라(7762m) 등 7000m급 2개봉을 세계 초등정했다. 그에게 난공불락의 봉우리는 없었다고 할까.

앞서 대한산악연맹은 13일 “네팔 다울라기리산 구르자히말(해발 7193m) 등반에 나선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한국인 원정대 5명이 현지시간으로 12일 밤 해발 3500m 베이스캠프에서 갑자기 몰아친 눈폭풍에 따른 산사태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AFP통신 등 외신들도 현지 경찰을 인용해 “한국인들을 포함해 최소 8명이 구르자히말에서 사망했으며 눈폭풍이 캠프를 덮치면서 사고가 일어났다”면서 “주네팔 한국대사관이 이들 원정대 시신을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전했다. 김 대장이 이끄는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지난달 28일부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을 위해 출정했었다.

히말라야는 산악인들의 무덤으로도 유명하다.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사망한 한국인도 90여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대표 여성산악인인 고미영 대장은 2009년 7월11일 낭가파르바트(8126m) 정상에서 내려오던 중 눈보라를 만나 목숨을 잃었다. 199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박영석 대장도 2011년 히말라야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박 대장이 이끈 원정대는 67일 일정으로 안나푸르나 남벽 등반길에 올랐다.

산악인들은 히말라야를 떠나지 못한다. 히말라야를 수차례 등반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너무 가슴이 아프고 비통하다”면서 “어마어마한 큰 눈사태가, 얼음 덩어리가 좁아지면서 그것이 1차적으로 100m아래로 떨어지게 되면 거기서 일어나는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눈가루, 돌가루, 얼음가루가 막 섞여 구름 형태로 일면서 뭉게뭉게 몰아쳐 베이스캠프가 완전히 초토화 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이번 사고는 밤에 일어나 손을 쓸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엄 대장의 설명이다.

김창호는 “한시도 히말라야와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약속을 지킨 셈이다. 결국 생의 마지막도 히말라야와 함께 했다. 영원한 ‘산사나이’의 영면을 빈다. 이 한마디는 꼭 해주고 싶다. “그대는 위대한 한국인”이라고.

오풍연 칼럼니스트
오풍연 칼럼니스트
  • 1979년 대전고 졸업
  • 1986년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1986년 KBS PD, 서울신문 기자 동시 합격
  • 1996년 서울신문 시경 캡
  • 1997년 서울신문 노조위원장
  • 2000 ~ 2003년 청와대 출입기자(간사)
  • 2006 ~ 2008년 서울신문 제작국장
  • 2009년 서울신문 법조大기자
  • 2009 ~ 2012년 법무부 정책위원
  • 2011 ~ 2012년 서울신문 문화홍보국장
  • 2012. 10 ~ 2016. 10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2012. 09 ~ 2017. 02 대경대 초빙교수
  • 2016. 10 ~ 2017. 09 휴넷 사회행복실 이사
  • 2017. 10 ~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 2018. 05 ~ 현재 오풍연 칼럼방 대표
  • 2021. 05 '윤석열의 운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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